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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의 추억 - 1부
최고관리자 0 39,607 2022.11.12 02:14
프롤로그 2011년 4월 ,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 해일에 쓸려 나간 이 도시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식수, 물자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여러 가건물에 모인 사람들은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다. 백현승은 트럭을 직접 몰고 올라온다. 트럭에는 ‘백가상사’(白家商事)라 쓰여 있었고, 친절하게도 ‘베카’라는 카타카나로 옆에 쓰여져 있다. 사실 현승은 여기까지 올 일이 없다. 백가상사의 일은 그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냥 오고 싶었다. 트럭 안에는 한식 도시락 수천 개가 들어 있었다.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인들도 한식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차는 이재민들이 모인 공회당 앞에 섰고, 백현승과 그 동생 백현림은 차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하나씩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을 하면 야쿠자들이 나와서 난리를 쳤을 것이다. 지금도 조심은 해야 했지만, 옛날과 같은 위험은 없었다. 21년 전만 해도 현승은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현림이 한국어로 묻는다. “형. “ 현림의 이마에도 주름살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 때 우리와 같이 놀던 사람들은 이런 데는 와 보지 않겠지.” 현승은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21년 전 그 때를… == 1990년 1월, 중국 헤이룽장성 우선뉴 마을. 다섯 선녀가 살았다고 해서 오선녀 (우선뉴)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성의 주도 하얼빈에서 200킬로나 더 가야 하는 궁벽한 곳이다. 샤오여(小葉)는 다른 농장 일꾼들이나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농사일이라는 건 한겨울이라고 해서 쉬는 게 없다. 둥베이(중국에서는 만주를 둥베이라 부름)의 겨울은 매섭다. 하지만 일이 얼마나 고된지 추위도 잊을 정도였다. 그녀는 자기 몸무게보다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손수레를 끌고 가고 있다. “양(楊)샤오여. 부모님은 어떤가?” 농장 감독이 묻는다. “그냥 그러세요.”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병이 있어, 샤오여가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지?” “네.” “자네는 훌륭한 일꾼이었어.” 그렇다. 이제 춘절(구정)이 지나면, 그녀는 자기보다 열 다섯살이나 많은 다이렌 상인의 후처로 팔려 가야 하는 신세다. 아버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힘들다 .. 내일은 또 새 태양이 뜨겠지만, 가끔은 – 자다가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 때 누가 달려왔다. “감독님. 전?니다.” -- 이나모리는 농장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가씨가 이런 한촌에서 자라시면서 저렇게 큰 손수레를 끌고 다니시다니… 생각만 같아서는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여긴 중국이고 중국에는 중국의 법이 있다. 일단 아가씨의 신병만 확보 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누가 감히 유키(結城) 가의 유일한 핏줄을 무시할 수 있는가? 이나모리가 일본에서 같이 데려온 일행 여러 명은 무술 유단자들이다. “아니, 당신은…” 이나모리 옆에는 구당비서가 서 있다. 구당비서가 감독에게 말한다. “양샤오여 양을 이 분이 보고 싶다시는군.” 이나모리는 이 날을 위해 중국어까지 배워 두었다. 그러니 통역은 필요없다. 잠시 후 양샤오여가 나왔다. 그녀는 살집이 적고 몸집은 품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 보여, 더욱더 애처로왔다. 이나모리는 그녀를 데리고 근처의 작은 헛간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나는 일본에서 온 이나모리라는 사람입니다. “ “일본에서 왜 나를 찾지요?” “그 이유는 당신의 할아버지가 일본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지요?” “당신의 아버지 양칭춘, 어머니 루이하오화는 당신의 친부모가 아닙니다..” “뭐라고요?” 샤오여는 놀라는 게 분명했다. 멍청이들은 받게 될 충격을 생각해서 살살 하라고 한다. 등신 같은 것들. 뭐든지 칠 때는 단칼에 쳐버려야 편하다. 한번에 끝장을 내야지만 모든 게 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그들은 아가씨를 불법으로 데려다 키웠습니다. 즉 .. 납치했습니다..” “아니예요. 부모님이 저를 위해…” “뭘 해줬는데요?” 이나모리가 말했다. “나가세요. 당신 같은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어요?” 이 때 부하 한 명이 이나모리에게 귓속말을 했고 ,이나모리가 말한다 . “그럼 부모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듣지요.” -- 평소에는 만만디로 세월아 네월아 하는 공안들이다. 특히 이런 한촌에는 이렇다 할 사건이 없어 꿀보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서장의 명령을 받고 재빨리 양칭춘, 루이하오화 부부를 잡아와 농장 바닥에 꿇렸다. 양칭춘이 말한다. “저희 부부가 무슨 짓을 했길래 잡혀왔습니까?” “유괴범들이 무슨 말이 많아!” 공안이 대답한다. (중국 법을 잘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법치는 약하고 권력이 강해서, 공소시효 같은 건 엿장수 맘대로 조정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샤오여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놀란다. “아니 왜 부모님이 저기 계시지요?” “네 아비 행세 해 오던 자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나 그거나 들으세요.” 루이하오화가 말을 잇는다. “저희가 아니었으면 저 애는 굶어 죽었을 거예요.” 이 때 이나모리가 나왔다. 그는 양칭춘, 루이하오화에게 말한다. “댁들. 댁들이 좀만 우리 요코 아가씨에게 잘해 줬다면, 당신들은 상하이에 큰 저택과 일자리가 보장되었을 거야. 그런데 감히 우리 아가씨를 돈 몇천 위안에 다이렌 상인의 후취로 팔아 넘기려 했어?”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두 사람은 이나모리에게 비굴하게 빌고 있었다. 역겨운 것들. 이나모리는 더 이상 이 궁벽한 동네에 있고 싶지 않았다. 샤오여가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정말 제가 아버지 어머니의 친딸이 아니예요?” “미안하다 … 그만 우리가 아이가 없어서 네 어머니에게서 데려왔다. 네 어머니가 다시 시집가는 걸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가 생각해 낸 거죠?” 잠시 전까지 그녀의 어머니였던 루이하오화가 대답한다. “내가 .. 이 사람은 말리는데 내가 자식을 못 낳아서…” 이 때 이나모리가 눈짓을 하자 공안의 곤봉이 그녀의 등을 친다. “이 년놈들 때문에 아가씨를 찾는 게 15년 이상 늦어졌습니다. 구당비서님. 유괴죄의 처벌이 뭡니까?” “총살형.” 구당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우리는 모두 다 좋게 하게 하기 위해…” 양칭춘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샤오여는 공황상태에 빠진 듯 움직이지 않는다. 불과 20여분 사이에 그녀의 생은 180도 바뀌었다. “자. 어떡하시겠습니까? 저를 따라 가시겠다면 제가 선처를 호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안 들으시겠다면, 이틀 후 총살형이 집행될 겁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한순간에 우리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지요?” “말로만 하면 못믿습니다. 일단 도시까지 가야 하겠습니다. 타시죠.” 양칭춘 부부는 계속 떠들면서 말한다. “살려 주십시오. 아가씨가 그렇게 대단한 분의 자식인 줄 알았으면 우리 같은 것들이 손도 대지 않았을 겁니다…” “자. 저 사람들이 즉결재판을 받고 이틀 후 사형 당하시는 걸 원합니까, 아니면 하얼빈으로 이송해서 제대로 재판해서 선처를 노리시는 걸 원합니까? 선택은 지금 하셔야 합니다. 저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공안들은 두 사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좋아요. 일단 한번 가 봐요. 그 대신 내 허락없이 부모님을 해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네, 그리 하지요.” 이나모리는 대답한다. 더럽고 추한 것들. 이나모리는 그들을 살려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아가씨가 일본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이들을 미끼로 쓸 것이고, 아가씨가 이들을 잊을 때쯤 총살하도록 할 것이다. 아가씨에게 그 개고생을 시키고 살기를 바래? 짐승만도 못한 것들.회장님은 그것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이나모리에게 전권을 일임했으니,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 지금 출발하면 하얼빈공항에는 저녁에나 도착하겠지. 그곳에는 홍콩에서 빌려온 전세기가 있다. 회장님의 전용기는 중국에 들어갈 수 없으니, 일단 홍콩까지 가서 거기서 전용기로 갈아탈 것이다. (당시에는 홍콩이 아직 영국 영토였고, 소련이 존재하고 있어 냉전이 이어지던 시대라 중국을 맘대로 휘젓고 다니기는 약간 어려웠음) == 도쿄 치요다구, 유키 빌딩. 30층짜리 유키 빌딩은 유키 제국의 핵심이다. 전 도쿄는 물론, 일본 전역과 세계 15개국에 건물을 소유한 유키그룹은 버블시대에서도 알아 주는 총아였다. 유키 제국의 영수 유키 다카오는 낡은 흑백 사진을 보고 있었다 .. 사진 속의 어린애는 유키 이사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핏줄이다. 지금은 일본 전체가 아닌,전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 당시의 그는 만주에 파견 나온 관리에 지나지 않았다. 도쿄에는 아내와 의붓딸이 있었지만 – 아니 있었었지만 – 그가 사랑했던 건 링링이었다. 극장에서 노래 부르던 가수 링링을 그 때 돈으로 5천원(지금 약 1억원)이나 주고 들어 앉혔고, 그녀는 내 아들을 낳아 주었다… 만주국이 소련에게 점령되고 일본인들이 피해 도망갈 때에 그는 겨우 도망쳤지만, 링링은 소식이 끊어졌다. 하기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데려갈 수도 없었겠지. 그 때만 해도 유키 가는 대대로 건재상을 하던 집안이었고, 그나마 폭격으로 땅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걸 다시 일으킨 건 바로 자신이다. 그러나 그의 재산 모두는 아내와, 아내가 낳은 단 한 명의 자식인 딸 미카코에게 상속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때 백현림 (나가시마 켄린)이 들어온다. “켄린. 무슨 일이냐?” “쇼군(장군)님. “ 다카오는 부하 직원들에게 쇼군이라고 불렸다. 다른 호칭은 허락되지 않았다. 감히 천황님이라 부를 순 없는 것이지만, 그 다음 위치인 쇼군이란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았다. “오냐.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갑자기 홍콩으로 출장을 가시는 겁니까? 그런 일은 우리에게 시키시면 되는데…” “너는 감히 쇼군의 의도를 짐작하려 드느냐? “ 유키는 대성 일갈로 현림에게 위협한다. “그런 일 같은 건 저희들도 잘하는데…” 형이 알면 주먹이 날아갈 일이다. 하지만 형은 서울에 있다. “쓸데없는 일을 알 거 없다. 나가 봐라. “ 현림은 조용히 돌아서 나간다. -- 도쿄 교외 오쿠타마 정신장해자 수용소 ‘동풍원’ (도후엔). 의사표현도 어려울 정도의 정신지체자(일본에서는 정신장해자라고 함)를 수용하는 이곳의 작은 방에는 , “시라유키 미카코, 55세” 가 수용되어 있었다. 20년 전, 1970년 이곳으로 보내진 미카코는 가나도 볼 줄 모르고 누가 부축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지체정도가 심한 애물단지였다. 혹시라도 누가 임신을 시킬까봐 불임수술을 받도록 그녀의 아버지가 조치했었다. 그녀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원장님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어느 귀족 집안의 서녀인 줄로만 알고 있다. – 아무도 찾지 않는 그녀를 한 명이 찾아왔다. 그녀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원장에게 보고하도록 했지만, 원장은 학회차 어디 간 데다가, 아무도 찾지 않다 보니 그걸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 “누구시지요?” “백현경이라고 합니다. 백 현 경.” “한국인이시군요.” 직원은 약간 놀랐다. 왜 한국인이 그녀를 찾지? 혹시 옛날의 조선의 무슨 공주(덕혜옹주를 말함)처럼 정신병원에 있는 조선귀족은 아닐까? 백현경은 그의 본명이고, 그는 한국에서는 백현승이란 이름을 , 일본에서는 나가시마 켄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현승은 말로만 듣던 미카코 이모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 문자 그대로 두 발 달린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땅에 떨어진 걸 그냥 엎드려 개처럼 집어먹으면서,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당연히 현승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이모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모는 누가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자 갑자기 돌변하여, 괴성을 지르며 현승에게 달려든다. 현승은 그녀를 겨우 진정시킨다. “보시다 시피 이런 지경입니다. 최대한 잘 돌본다고 하는데 저것밖에 안 됩니다.” “….” 현승은 할 말이 없었다. 저 지경이니 모든 것이 다 쇼군에게 넘어가도 할 말이 없지. 그는 매우 실망한 얼굴로 거기를 떠난 뒤, 다시 혼다 스포츠카에 올랐다. 유키 가의 15대 유키 분자에몬 15대목은 원래 둘?아들로, 조선에 와서 포목점을 했었다. 그러다 큰형이 죽자, 조선에서 동거하던 게이샤 오기쿠에게 가게를 넘겨버린 후 큰형의 미망인과 결혼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 이쿠코를 낳았다. 이쿠코는 도쿄대를 졸업한 엘리트와 결혼했지만 그는 폐병으로 죽었고, 뱃속에 미카코 이모를 넣은 채로 상대(지금의 히토츠바시대) 를 졸업한 가난한 집 아들 다무라 다카오와 결혼하였으며, 다무라 다카오는 16대 유키 분자에몬이 되었다. 그리고 .. 미카코 이모가 저 모양으로 태어났지만, 이쿠코는 다카오의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고 끝내 자식을 더 낳지 않았다. 한편, 오기쿠는 15대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다케코를 낳았지만 포목점은 파산했고, 경성에 올라와 명치정(명동)에 술집을 차려 생계를 유지했다 . 다케코는 총독부에서 일하던 조선인 나가시마와 결혼하여 쌍동이 두 딸인 노리코와 미야코를 낳았지만, 나가시마는 해방 직후 열병으로 사망했다. 다케코는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일본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촌 이쿠코 뿐이었고, 그 시절에는 일본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현승과 현림의 어머니인 장내리(노리코)와, 정재준, 정재필의 어머니 장미자 (미야코 – 한자에 상관없이 음으로 한국명을 지음)는 쌍동이 자매이며, 네 사람은 모두 1969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았던 유키 이쿠코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 말씀이다. 오기쿠는 세상을 떠났으며, 다케코는 일본에 와서 닛코 별장에서 살고 있고, 장미자와 그 남편 정승규는 미국으로 이민가서 뉴욕 유키 빌딩의 관리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장미자는 물론 나가시마 미야코라 칭하고, 웃기는 건 정승규도 일본말 한마디도 못하면서 나가시마 쇼큐라고 창씨개명을 해버린 것이다. 부모가 이 모양이니 그들의 아들들인 정재준, 정재필 (나가시마 히데토시, 나가시마 히데스케)의 인간성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한 게 아닌가? 현승의 아버지 백광철은 군인이었으나 1968년 김신조 사건 때에 세상을 떠났고, 국가유공자 자녀인 관계로 현승과 현림은 병역면제였으며, 재준과 재필은 미국국적을 취득해 외국인이다. (지금은 어떻게 법이 되어 있는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국가유공자 자녀는 병역면제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1972년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현승과 현림은 어렸을 때부터 유키 가에서 자랐다. 어려서 미국에서 자란 재준, 재필과는 또 다른 것이다. 사실 현림은 일본국적을 취득했지만, 현승은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굳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일부러 특전사까지 다녀 왔다. 이 모든 게 다 한 가지 목적 때문이라는 걸 쇼군이 알까, 모를까? 현승은 알 수 없었다. 이제 다시 나고야로 가야지. 그는 나리타 공항이 아닌 나고야 공항으로 일본을 드나들곤 했다. 나리타 공항으로 가면 아무래도 쇼군의 눈을 피하기 어려울 테니까. -- 백현림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룸살롱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소주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카, 톡 쏘는 이맛. 일본에서 고급술이란 건 다 마셔 봤지만 역시 한국인은 소주가 최고다. 옆에 앉은 아가씨들은 한국말로 현림에게 희롱한다. 현림은 웃으며 그들을 받아준다. 그는 지배인에게 한국어로 묻는다. “2차 가려면 얼마나 줘야 해?” “아시면서. 여기 시세로 아가씨 한명 당 30만엔(지금 돈 900만원)은 줘야죠.” “그렇게 비싸? “ “지금은 호황이잖아요? 이 아가씨들도 일본에 돈 벌러 왔는데 사장님이 챙겨 주셔야져.” “자, 기분이다.” 그는 1만엔짜리 지폐 두 다발을 던져 주었다. “아가씨 5명에다 나머지는 네 팁이다.” “술값은요?” 그는 다시 지폐 한 다발을 던진다. 아가씨 5명과 함께 나가던 현림의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재준이 아냐? 그리고 그 옆에는 한국에서 잘나가다 갑자기 일본에 유학온 영화배우 최나영이다. 재준이 참 대단하네. 지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다면서 한국인이랑 만나고 다니니. 괌. 거대한 침대에는 정재필과 마츠이 아리사가 누워 있다. 정재필은 아리사의 거유를 만지며 말한다. “내가 다 막아줄께” “사랑해.” 아리사는 재필의 물건을 잡으며 말한다. 누가 알까. 만인의 연인인 아이돌 아리사가 여기서 재필의 육봉을 핥고 있을 줄. 귀여운 얼굴과 몸매에 큰 가슴까지 겸비한 아리사는 최근 제일 핫했다. 그런 그녀가 돌연 공연까지 취소하고 괌으로 잠적한 데에는 역시 정재필의 금력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 재필은 콘돔을 씌운 후, 고래 기름으로 잘 발라 놓은 아리사의 황금 구멍으로 자신의 좆을 끼운다. 그는 그녀의 조그만 몸을 아래서부터 위로 쓰다듬으며, 그녀의 온몸을 음미한다. 아리사도 많은 경험으로 단련된 질과, 춤으로 유연한 몸을 흔들면서 재필에게 최대한의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다. 재필의 좆이 아리사의 잘 면도한 보지를 스칠 때마다 그녀는 뭔가 비명 소리를 지른다 .. 그런데 그 비명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 “아 .. 조아 .. 조아…” 갑자기 재필의 좆이 사그라든다. 그는 작아진 좆을 빼고 아리사 앞에 선다. “방금 뭐라고 했어?” 그는 일본말로 묻는다. “응… 좋다고.” 아리사는 일본말로 대답했다. “분명히 ‘좋아’ 라고 조선말로 했잖아?” “아니야.. 나 조선말 몰라.” 그녀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너 , 한국 혈통이야?” “아니라고… “ 그녀는 눈물을 흘리려 한다. 정말 아니면 당당히 나올 일이지, 왜 울려고 하나? “그래 울어.” 그는 이젠 더 쓸모없이 된 콘돔을 빼 쓰레기통에 던진 후, 옷을 걸친 후 밖으로 나가 버렸다. 어째 내가 고른 애들은 하나같이 다 조선피가 섞인 애들이야. 김새 죽겠네. 그는 형님과는 달랐다. 형님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다 먹엇지만, 재필은 반드시 일본 명문가의 따님과 결혼해서 일본 상류층에 또아리를 틀 것이다. -- 하얼빈공항. 평생 여권이란 걸 만들 일이 없던 샤오여를 위해 여권국에 관리가 직접 사진기와 여권 기계까지 갖고 나와서 즉석에셔 중국여권을 만들어 주었다. 이나모리는 생각했다 .. 어차피 며칠 후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샤오여는 왕족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전세기를 탔다. 전세기에는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여러 스탭들이 그녀를 맞았다. 그녀는 일하다 바로 왔고, 점심도 저녁도 먹지 못했다. 회장님이 빨리 데려오라고만 했지 그런 건 따지지 않았으니까. 전세기에 타자 마자, 중국어를 하는 스탭들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아가씨. 모시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 ..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이나모리는 웃으면서 말한다. “일단 홍콩에 가시면 유키 팰라셜 호텔에 묵으시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할아버님을 만나시게 될 겁니다.” “왜 저지요?” 이나모리가 말한다. “당신의 진짜 아버지는 황티안리엔이란 분입니다. 황티안리엔의 아버님이 바로 유키 다카오 님이십니다. 지에 성 롱 푸 (結城隆夫)”. 지에성롱푸? ..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 세계 최고의 부자는 작년까지의 지 이밍 (츠츠미 요시아키)가 아니라, 금년부터는 일본의 지에성롱푸라고. 이나모리는 쇼군이 어린 마사오(황티안리엔)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 분이 당신의 아버님과 할아버님입니다.” “아버지 .. 할아버지…” “이분은 당신의 할머님입니다.” 중국옷을 입은 여인은 한 눈에도 갸냘파 보였다. “린링링 여사님입니다.” “그럼 제 어머니는요?” “당신 어머니의 사진은 없습니다. 당신의 아버님은 조중혼혈의 량명화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당신을 낳은 후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 “그러니 당신은 사실 일본인의 피는 1/4밖에 섞이지 않았고, 조선족 ¼, 한족 ½의 피를 가지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신가요?” 이나모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찾지 못했다고 말하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10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날 버리고 갔으면 잘 사시기나 하시지…” 샤오여는 말했다. “이제 당신은 유키 요코(葉子)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실 회장님께서 생각해 두신 이름은 따로 있지만, 당신이 쓰던 이름 샤오여(小葉)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이름을 쓰는 게 혼란을 줄이는 길이라 판단하셨습니다.” -- 비행기가 홍콩의 카이탁 공항 (당시는 첵랍콕공항은 없었음)에 도착하자, 이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실려 유키 팰라셜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은 호화의 극을 달했다. 아직도 샤오여는 농장에서 입던 옷 그대로였다. 경비들이 다가왔지만, 이나모리의 얼굴을 보자 모두 깍듯이 절한다. “자. 위로 올라갑시다.” 이미 시간은 밤 1시 반.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막을 자는 없다. 스위트룸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호텔 메이드들이 그녀를 맞았다. 중국 사람들이니 언어에는 큰 문제가 없다. “아가씨는 중국어가 국어시니 불편 없으실 겁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샤오여가 안에 들어가자 꿈에도 못 볼 화려한 광경이 그녀를 맞이했다. 금으로 수놓은 이불 하며, 큰 테레비 하며, 조명 등 그녀는 평생 보지 못한 광경들이었다. “목욕하시지요.” 그녀는 욕실로 들어갔다. 평생 욕실에서 목욕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샤오여는 샤위기조차 사용할 줄 몰랐기 때문에, 메이드들이 서서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판단이 들자, 그들은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다. 이 때 샤오여가 말했다. “제 옷들은 하나도 버리지 마세요.” “왜지요?” “중국에서의 추억을 잊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아직도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 꿈이 깨진다면, 최소한 돌아갈 때 입을 옷은 갖고 있어야지. 작품의 원안이 된 대만 드라마는 사실 1989년 나온 일본 만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고, 그 당시 일본 경제는 버블시대로 흥청의 극에 달해 있던 시점입니다. 그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 오긴 하였지만, 설의 전개나 결말 등은 전혀 다를 것을 말해 두는 바입니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10회 정도 분량으로 끝낼 생각입니다. 이미 거의 다 콘티를 짜놓았기 때문에 연중 없이 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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