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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그를 막지 못한다
최고관리자 0 52,446 2023.08.21 13:55


  흐릿한 의식너머로 거실에서 울리는 전화벨소리가 들렸다. 몇번인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인하는 수면아래에 있던 의식을 깨웠다. 멍한 의식을 느끼며 눈을 뜬 인하는 전화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비척거리며 다가갔다.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라면 어림없을 흐트러진 몸짓으로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여보세요"

아직까지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음을 상대방에게 확인시키는 인하였다.

"여보세요? 정 인하씨 댁입니까?"

"네, 맞습니다."

"정 인하씨 계십니까?"

"전데요."

"여기 부평결찰서입니다. 혹시 정 운하씨를 아십니까?"

"제 동생입니다만 무슨일이시죠?"

"동생분이 사고를 치셔서요. 보호자가 나와주셔야 겠습니다."

찬물에 세수를 한들 이보다 정신이 번떡 깨어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있지 그 순하고 모범생인 운하가 사고를 치다니....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금방 가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욕실로 뛰어간 인하는 대충 얼굴을 씻어내고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현관을 나서며 엘리베이터앞으로 뛰어가면서 인하는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그 착하고 순한 아이가 어떻게....
분명 누군가의 잘못을 뒤집어 쓴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 그 아이에게 왜 이런일이...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빼며 경찰서에서 두려워 울고 있을 어린 청년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4년전이였다. 
중학교 2학년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조그맣고 유난히도 하얗던 아이가 마지막 기억이였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유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마음을 잡고 더이상의 방황은 백해무익하다는 결론에 이르자 바로 그동안 쌓은 경력으로 여러곳에 이력서를 넣은후 얼마기다리지않아  쉽게 취직을 하였다고 연락을 받자마자 귀국하였다. 
몇년만에 돌아온 한국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있었다. 

무언가 경직되어있었고 활기를 잃어버린 듯 안으로 움추려든 것만 같았다. 전에도 썩 맘에 드는 분위기는 아니였지만 지금은 보기만해도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간당간당 이어지던 질서가 어긋나버린 그런 느낌이 보는 이를 답답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였지만 맘에 들지 않는 건 않는거다.

부모님의 장례식때 넋이 빠져 있던 자신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리던 아이.
서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인하는 대번에 운하를 알아보았다. 
여전히 하얗고 여린 모습이 피의자석에 앉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모습에 눈이 아려왔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한 아이를 이런곳에 둔단 말인가. 인하가 책상으로 다가가자 운하를 다그치고 있던 형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더니 호오!하는 감탄사를 터트린다. 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꽤 그럴싸해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형사의 행동을 그냥 무시해버렸다. 

"정 운하형되십니까?"

"네 정 인하라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촌형이지만. 
운하는 인하의 출현에 고개를 들기는 켜녕 더 숙이고 들어갔다. 마치 자신의 죄를 시인이라도 하는 듯이....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그게 이 청년이 사람을 찔렀습니다. "

"넷? 그럴리가요. 무언가 잘못아신것이 아닙니까?"

"아니 맞습니다. 본인도 시인을 했구요. 전후상황으로 보아 무슨일이 있는건 확실한데 도무지 입을 열지 않습니다. 게다가 집 전화번호도 대지않고 간신히 입을 연것이 당신의 번호였습니다. "

"운하가 왜 사람을 찔렀다는 겁니까? 왜요?"

인하의 말투가 격해질수록 운하의 고개는  바닥을 향했고 형사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저도 알고 싶습니다.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아무것도 알수가 없지않습니까. 이런식이면 구속되는 수밖에 없는데 전혀 변명을 하려들지않습니다. 형님이 설득 좀 해주시지요.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그런데 들락거려야 쓰겠습니까?"

인하는 할말을 잃고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운하를 쳐다보았다. 
운하는 인하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다. 
마주잡은 두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저토록 소심하고 마음 약한 아이가 사람을 찔렀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잠깐 이 아이와 둘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인하의 부탁에 형사는 두사람을 취조실로 안내했다. 

"잘 설득해보십시요. 상황은 명확해보이지만 아무래도 걸리는 것이 있으니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형사가 보기에도 운하는 사고를 치기에 너무 여린 성격처럼 보였는지 안쓰러운 듯 쳐다보고는 문을 닫아주었다. 
취조실의 의자에 앉아있어도 운하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못하고 있었다. 인하는 그모습이 안쓰러웠다. 속에는 왜 아무런 변명을 하지않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울컥했으나 축처진 어깨와 들지도 못하는 고개를 보니 쉽게 입이 열리지않았다. 

"얼굴이나 좀 보자. 오랫만에 형이 왔는데 얼굴도 안보여줄거냐?"

그제서야 힐끔 눈부터 들어 인하의 얼굴을 보더니 곧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많이 컸구나."

"으아아앙... 인하형...."

인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운하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운하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몹시 겁을 먹은 모양이였다. 인하는 운하가 진정을 할때까지 등을 토닥여주었다. 한참을 울고난 운하가 코가 막혀 맹맹한 소리로 인하를 밀어내며 쑥쓰럽게 말을 했다. 

"미안해 형. 도저히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연락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막막하기만 하고 기억나는 것은 형 전화번호뿐이잖아."

"잘했어. 되도록이면 안좋은 일로 어른들의 심려를 끼쳐서는 안되지. 하지만 이렇게 불러놓고 아무말도 해주지않으면 나 역시 너를 어떻게 도와야할지 알수가 없잖아."

그래도 운하는 머뭇거리며 망서렸다. 하지만 인하의 끈질긴 시선에 겨우 입을 열었고 운하의 말이 계속될수록 인하의 안색이 험악해져갔다. 그리고 운하의 말이 끝나자 이를 바드득 갈고 담배를 꺼내물었다. 
운하는 커다란 죄라도 지은 듯 또다시 고개를 숙이고 인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뻑뻑뻑 담배연기를 피워대던 인하가 꽁초를 재털이에 비벼껐다. 

"그 새끼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든?"

"성모자애병원이래 "

"정 운하, 고개 들어. 너 잘못없다. 나같으면 그새끼 죽여버리지 너처럼 부상만 입히지않아. "

"형."

"그 새끼가 원하는게 뭐라든? 돈?"

"아니 모르겠어."

"아니 상관없다. 합의를 해주지않으면 내가 가서 그 면상을 그어버리고 대신 들어가 살아주마. 너에게 무슨일 생기면 내가 그새끼 죽여버린다."

운하는 4년전에도 냉정하고 차가운 성격을 가졌던 인하가 유학을 다녀온 후 더 거칠어져있음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선배이기는 하지만 나이 터울이 있어 같이 다닌적이 없지만 그의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어쩐지 경찰서에 있는 자신보다 병원에 있는 세기가 불쌍해지는 운하였다. 

"걱정마. 고개도 숙이지마, 내가 그 새끼 만나보고 올께."

"형."

"그런 표정짓지마, 내가 설마 그새끼 죽이기야 하겠냐? 적당히 합의해주지않으면 어쩔수 없지만 그전에는 건드리지않으마."

밖으로 나온 인하는 형사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했다. 형사는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그이야기를 듣더니 그 역시 담배를 꺼내물었다. 

"도데체가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 할짓이 없어서 그런짓을.... "

운하는 형사가 혀를 차자 또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내 자식이였다면 잘했다고 하겠지만 이건 영 까다롭군요. 이런일로 정당방위가 될 수 있는건지...."

"제가 병원에가서 합의를 받아오겠습니다. 합의만 받아오면 형사님이 잘 마무리해주십시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운하야 마음 편하게 가지고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다녀오마."

운하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인하를 쳐다보았고 인하는 그런 운하의 머리를 헤집었다. 귀여운 녀석. 





   성모자애병원에 도착하니 새벽 3시였다. 응금실로 찾아가니 중환자실로 옮긴 후 였다. 담당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다행히 장기는 다치지않아 큰위험은 면했으나 피를 많이 흘리고 상처부위가 넓어 수술후 경과를 지켜보기위해 중환자실로 옮겼다는것이다. 면회는 다음날 오전 11시라는 말에 인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담당의사는 보호자라도 만나보겠냐고 물어와 고개를 끄떡였다. 

중환자실앞에 앉아 환자의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얼마지나지않아 덩치가 꽤 큰 남자가 다가오며 인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보호자대기실에서 쉬고 있었던 듯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옷이 구겨졌지만 깔끔한 인상이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인하는 속이 끓어오르며 다시 담배를 피우고싶은 욕구를 느꼈지만 입술만 깨물고 참았다. 

"황세기의 보호자되십니까?"

"네 그렇게 됩니다. 그럼 그쪽은?"

"정 운하의 보호자됩니다."

"보호자치고는 젊으시군요."

인하는 자신이 남들에 비해 어려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쉬운 인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그런말을 듣자 부화가 치밀었다. 보태준것도 없으면서 웬 시비?

"남의 말 할 처지는 아니군요."

비꼬는 듯한 인하의 말에 그의 눈썹이 꿈뜰거렸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들으셨습니까?"

인하의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려서 저지른 일이니 서로 좋게 합의를 보았으면 합니다."

"잠깐, 지금 그렇게 당당하게 나오실 때가 아닐텐데요."

세기의 보호자라는 사람은 인하의 당당한 태도가 영 거슬리는 모양이였다. 
인하는 얼굴을 찌푸리는 그의 모습에 이죽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우선은 운하를 먼저 꺼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억눌렀다. 그다음에 자신의 성질대로 해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이였다. 

"아니 오히려 죽이지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셔야 할겁니다. 제 동생이기에 망정이지 저 같았으면 목을 부러트리던가 차로 치어버렸을 테니까요."

웃으면서 내뱉는 냉정하기이를데 없는 인하의 말에 그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그로서는 다친것은 자신의 동생이며 피의자 신분인 그의 동생이 기어들어와 빌어도 마땅치않은 판이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이 자신의 동생의 잘못인 듯이 말하지 않은가.
한밤중에 응급실이라는 전화를 받고 자다가 달려온 이후 본 것은 피를 철철철 흘리며 기절해 있는 동생의 모습이였다. 도착하자마자 수술동의서에 싸인을 하고 수술을 끝낸 동생이 중황자실로 옮겨진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중환자대기실로 가서 잠깐이라도 눈을 부친 그였다. 자리에 누운지 30분도 지나지않아 호출되어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남자도 저런 모습일수 있구나할 정도로 새끈하게 생긴 청년의 모습이였다. 그리고 곧 그 새끈한 청년의 말에 생전처음 뚜껑이 열린다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내 동생이 무슨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칼침을 맞을 정도의 짓을 할리가...넷? 그게 무슨..."

"강간하려 했다구요."

인하는 자신의 말에 언짢은 기색으로 반박하는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욕이라고 퍼붓고 싶지만 아직은 이라고 열심히 참으면서...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못하고 멍하니 되묻던 그가 한참 후에야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누가, 누구를?"

여전히 믿기지않는 듯 되묻는다. 그 모습이 은근히 배알이 뒤틀리고 짜증이 났다. 생긴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사람말을 제대로 못알고 듣고 여러번 반복하게 만들어? 잠도 제대로 자지못해 피곤해 죽겠구만.

"당신 동생이 내 동생을."

기여코 인하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대낮이였다면 간호사들이 떽떽거렸을테지만 모두가 잠든 새벽녁인지라 아무도 없었고 당사자인 피해자의 형은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애는 여자친구도 있다구요.그런 애가 왜?"

"그걸 왜 내게 물어봅니까? 당신 동생 깨어나면 물어보시구랴. 어쩔겁니까? 지 몸 지키고자 칼 휘두르고 겁나서 모든 것이 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떨고 있는 내 동생 저대로 내버려둘겁니까? 설마 남자아이는 법적으로 강간이 성립되지않는다고 우기거나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요? "

세준은 그의 말이 왜 이렇게 고깝게 들리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저 삐딱한 눈빛과 말투때문이리라.
게다가 지금 그가 주장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수가 있단 말인가.

"당신 말만 듣고 어떻게 믿으라고."

"믿지말든지 대신 당신 동생 깨어나 그때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당신 동생은 내손에 죽어.아니 내 동생이 당한 일 똑같이 당하게 만들어주지. "

하며 입꼬리만 올려 웃는데 눈빛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에 곱상해보였던 이미지는 흔적도 없었고 날고 긴다는 세기녀석보다 더 위협적인 분위기였다. 세기녀석이 피래미라면 저 남자는 대어라는 그런 느낌!

"후우~ 동생분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부평경찰서에 있으니 보호자분께서 같이 가셔서 합의서에 싸인해주시지요. 아 걱정마십시요. 댁의 동생분의 치료비는 전부 저희쪽에서 물어드리지요."

"됐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쪽의 잘못도 있으니까요."

이죽거리는 것이 보기싫어 대담하게 나오기는 하였지만 왜인지 억울한 느낌을 지워버릴수가 없는 세준이였다. 무언가 반박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도 없었고 그리고 너무 피곤했다. 
인하의 차를 타고 부평결찰서에 도착해서 세준은 담당형사의 노골적인 시선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마 대충이나마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모양이였다. 
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보호자란에 서명을 하는 인하의 이름을 본 세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이였던 것이다. 

"혹시 부O고 나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나 황세준이다. 너 날 볼때마다 황새대가리라고 불렀잖아."

"아!!!! 그 황새대가리!!!!"

지난 몇년동안 들어보지 못했지만 다시 들어도 기분나쁜 별명이였다. 세준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정말 빨리 합의해준 것이 다행이였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막나가는 말투와 새끈한 얼굴을 봤을 때 얼른 기억했어야 하는데.... 그나마 이정도에서 마무리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며 두고두고 저 악질에게 시달릴뻔 했다는 생각을 하자 십년은 감수한 느낌이였다. 

고교시절 처음 그의 단정한 외모와 연약해보이는 분위기에 많은 학생들이 홀렸다. 자신의 큰 형이 호감을 드러냈을때만해도 그저 귀여운 후배려니 하고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가끔 보이는 거친 행동에 왠지 꺼려지는 인물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 막나가는 말투만큼이나 성격 역시 개차반에 순악질이라 그 새끈한 외모를 넘보고 덤볐던 놈들 중 태반은 병원신세를 졌고 제기불능의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한번 돌아버리면 배에다 칼을 꽂고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상대방을 물어뜯어야 직성이 풀리고 만다는 소문이 퍼진뒤로는 누구도 저 개차반같은 녀석을 건드리려하는 녀석은 없었다. 
그리고 그 성격에 일조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큰형이였다. 
아마 큰형은 흑심이 있어서 친절하게 이것 저것을 가르쳐주며 자신을 방어하도록 만든 모양이지만 그 것에 자신이 당할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어쩐지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더라 하는 생각을 하는 세준이였다. 

"유학 갔다더니 언제 귀국했냐?"

"어제! 그보다 그거 너네집 유전이냐?"

"뭐가?"

"우리 형제 덮치는 거."

하마터면 경찰서안에서 주먹질을 할뻔했다. 세준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리고 싶은 걸 참을인을 수십번 외우며 속을 삭여야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수십번 찾았다. 
사실 큰형 세성이 저 녀석을 덮쳤던 것도 사실이고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막내동생 역시 저 녀석의 동생을 덮치려다 사고 당항거라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유전이라니....
그건 자신의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너 그러다 언젠가는 칼 맞는다."

"웃기고 있네. 난 남자새끼 덮칠 생각 조금도 없다."

세준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지금 경찰서안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저 개차반을 묵사발을 내놓고 싶은 심한 갈등에 시달렸다. 아마 담당형사가 데려온 운하라는 아이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세준은 여전히 인하의 뻔뻔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으면서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인하의 동생이라기에 얼마나 괴팍한 인물인가 싶어 보니 이건 완전히 극과 극이다. 
도저히 정인하의 동생이라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소곳하고 얌전하며 인하를 노려보는 자신을 보더니 어쩔줄몰라하며 걱정하는 빛이 가득하다. 게다가 강아지마냥 순한 눈빛에 저절로 큰형보다 그나마 막내 세기 녀석이 안목이 훨씬 낫구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그만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하여간 반가웠고 병원비는 신경쓰지 말아라 그리고 이런 일로 두번다시 만나지말자."

이런일이 아니라도....

"동감."

손을 흔들며 운하라는 동생을 데리고 경찰서를 나서는 인하는 끝까지 얄미웠다. 
그렇지않아도 큰형때문에 그에게는 큰소리 칠 형편이 아니였건만 막내녀석의 일까지 겹쳐서 만나봐야 수그리고 들어가야할 판이였다. 그러니 두번다시 만나지 않게 되기만을 아는 신이란 신은 모두 찾아 빌었다. 

"그리고 너 택시타고 가라. 피곤해서 데려다주지 못하겠다."

하며 경찰서까지 같이 타고왔던 자신의 차에 동생을 태우더니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으이구... 저새끼 . 어째 세월이 지나도 하나도 변하지않았다냐. 그보다 저새끼 귀국한 걸 알면 큰형이 가만히 있지않을 텐데 야단났군."




  "운하는?"

세기는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찌른 정 운하부터 찾았다. 세준은 뒷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세기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자신이 그 개차반같은 정 인하에게 끽 소리하나 내지못하고 끌려다니고 당한 것이 모두 이녀석 탓이라고 생각하니 평소의 건강하다못해 넘쳐보이던 얼굴과는 정반대인 핼쓱한 얼굴에도 전혀 동정심이라는 게 생겨나지 않앗다. 

"형, 운하는?"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는 세준의 시선은 예초부터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세준의 대답을 재촉하는 세기였다. 

"형이라는 사람이 데리고 갔다."

"별일 없는 거야?"

별일? 별일이라면 그 운하보다 자신에게 있었지하는 생각이 들자 열이 뻗쳐올랐다. 

"야! 너 이새끼!!! 너 도데체 뭔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엉? 큰형의 개망나니 짓도 모자라 너도 남자새끼나 덮치는 짓을 하는거냐? 내 손에 죽고 싶지?"

특실로 옮기기는 했으나 방음까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깜박하고 소리를 지르던 세준은 곧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남이 들어봤자 좋을 것이 하나 없는  집안 망신거리아닌가. 

"그런게 아니란 말야."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거냐? 그럼 네가 그 운하라는 아이를 덮치지 않았다는 거야?"

기대어린 시선으로 물어보는 세준을 단번에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그의 동생이였다. 

"아니."

그럼 그렇지. 그 개차반이 그런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날뛸리가 없지.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퍽!!!!

세준은 제 분을 이기지못하고 세기의 머리통을 갈겨버렸다. 퍽하는 소리에 아직 회복이 덜 된 동생의 상태가 떠올라 움찔놀랐지만. 

"아이씨. 왜 때려. 그렇지 않아도 칼침맞은데가 쑤셔죽겠구만."

자기 잘못은 전혀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노려보는 세기를 보니 배알이 뒤틀렸다. 

"아이씨이? 이게 아프다고 봐주니까 되도않은 영어하냐? 새끼야 너 나나되니까 이정도이지 운하인지하는 얘 형 만났으면 진작에 넌 죽었어."

"운하는 형 없어."

"뭐?"

"운하는 외동아들이란 말야."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형이 없다니 그럼 엊저녁 아니 오늘 새벽 나타나 자신을 달달 볶아놓고 간 그 개차반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란 말인가. 

"웃기고 있네. 오늘 새벽에 그아이 형이 찾아와서 데리고 갔는데 어디서 구라야? 그것도 그냥 형인줄아냐 ? 고등학교시절 네학교 선배로 개차반하면 모르느 사람이 없던 그 새끼더라. 너 때문에 갈굼당한 걸 생각하면 이걸 그냥 꽉!"

"개차반? 그거 큰형 애인 별명아니였던가?''

세준은 세기의 말에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열받아서 내뱉다보니 세기가 알게되면 세성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못한 것을 알았다. 
힐끗 보니 세기는 눈을 빛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다.

"야야.. 개차반이 한둘이냐? 그녀석 아냐."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했지만 저 여우같은 녀석의 눈빛을 보니 세준의 변명을 믿는 눈치가 아니였다. 

"정 운하... 그리고 보니 큰형 애인 이름이 정 인하였지? 외국에 나간 형이 있다더니 그 형인가보구나. 이런 인연이.."

"아니라니까."

세준의 극렬한 부인에도 이미 세기는 입력완료인 상태인 모양이였다. 

"큰형에게 전화해야지."

하며 휴대폰을 집어드는 걸 세준이 낚아챘다. 

"뭐야?''

"너 미쳤냐?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시는 꼴 보고싶지? 지금 너 사고난 것도 알리지 않았는데 거기에다 큰형까지 부모님을 들썩여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펄펄 뛰는 세준을 바라보는 세기의 눈빛은 세준의 걱정에 동감하는 기색이 아니라 한심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형은 말야 엄마, 아버지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아. 그만한 일로 두분이 어떻게 되실거라고 생각해? 천만에 오히려 그 인하인지 하는 형을 찾아가서 난리 법썩을 떨어서라도 떼어놓을 강심장들이라구."

세기의 말에 세준이 더 끔찍하다는 듯이 핼쓱해져서 고개를 흔들어대었다. 

"으윽 생각하기도 싫다. 난리법썩? 넌 그 개차반을 직접 만나보지않아서 몰라. 그 자식은 멀쩡한 십대도 심장마비시키거나 혈압으로 쓰러뜨릴 위인이라구. 너 큰형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잖아. 절대 손해보지않고 비열하고 제멋대로이며 절대로 상대방에게 지지않는 고단수인걸. 하지만 그런 큰형까지 그새끼한테 당해서 한동안 재기불능상태에 빠졌었다구."

"와우!!!! 그렇게 대단해? 정말 굉장하다. 만나보고 싶잖아.''

자신의 설명에 질리기는 켜녕 호기심만 더 들어내는 동생을 보내 세준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무리해도 자신의 형제들 중에 멀쩡한 사람은 둘째형뿐인 듯했다. 겁 먹으라고 해준말에 동경하는 마음을 품다니...

"미친새끼. 너 당분간 그 새끼 피해다니는 게 이로울거다. 넌 만나는 즉시 사망이야.'

세준이 내뱉은 말에 세기는 더욱 눈을 빛냈다. 으이구 내가 미치고 말지하는 심정으로 세준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큰형은 안돼. 명심해 만약 큰형에게 연락이라도 하는 날엔 너 사내새끼 덮치려다 칼침맞았다고 둘째형에게 이른다. "

그때까지 그 어떤 말에도 겁을 먹지않았던 세기가 둘째형이란 말에 핼쓱하게 질렸다. 워낙 사고를 치고 돌아다니는 큰 형인 세성은 자신이 한 짓이 있어 동생들에게 뭐라고 할 처지는 못되었지만 둘째 형인 세형은 그야말로 바른생활사나이 , 사회의 모범생으로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사람으로 언제나 집안에 무슨일이 생기면 부모님조차도 큰형이 아닌 둘째형인 세형과 의논을 할 지경으로 세형의 말 한마디면 세기는 일년이고 이년이고 용돈 한푼없이 알거지로 살아야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알았어."

씀씀이가 헤픈 세기를 가장 적절하게 다룰수 있는 것이 바로 용돈이였다. 

"명심해."

다시한번 일침을 가한후 세준은 그래도 안심이 안되는지 세기의 휴대폰의 밧데리를 빼버렸다. 

*************




  "그보다 어떻게 된거냐?"

세준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는 세기에게 사건의 전말을 물었다. 반항의 기미를 보이던 세기가 그말에 흠칫하더니 고개를 휙 돌려 세준의 시선에서 달아나려 했다. 저 뻔뻔한 녀석이 분명 찔리는 것이 있을 때 하는 행동이다.

"그런 일이 있어."

"그런일이 뭔데?"

그냥 넘어가주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어림없었다. 자신이 그 개차반에게 당한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냥은 넘어가 줄 수 없었다. 
확실한 정황을 듣기 전에는 절대로 물러서지도 세기녀석을 내버려둘 생각도 없었다. 

"아이씨... 알아서 뭐하게?"

"아이씨이이? 경고하는데 한번만 그 소리 내귀에 들리면 죽인다아.."

평소라면 틱틱거리며 반항을 했을 세기였지만 자신이 저질러놓은 일이 걸리는 지 얌전하게 물러선다. 

''너 그럼 그 아이한테 칼침을 맞아도 할말이 없을 짓을 하기는 한거냐?"

"응."

"응? 너,너 이새끼 도데체 밖에서 무슨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엉? 진핸지 신핸지 그런 여자친구도 있는 새끼가 뭐가 아쉬워서 같은 거 달린 사내새끼나 덮치고 다니는 거냐구. 엉? 너 나 미치는 꼴 보고싶지? 칼 맞아도 할말이 없냐니까 응? 꽉 죽어버려 새끼야."

세준은 정말 돌고 싶은 심정이였다. 이런 상황이면 정말 원하는 상황이 아니지만 그 개차반녀석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얼굴도 들지 못할 상황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르고 현기증이 생긴다.  왜 하필 그 자식 동생이냐고....

"씨이.. 하지만 운하가 더 예뻐. 그 쨍알거리는 계집얘들처럼 이것 사달라 저것 사달라, 보채지도 않고 이야기도 잘 통한단 말야. 게다가 얼마나 착한데."

"미친놈아. 당연히 같은 사내새끼니까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여자얘들도 착한 얘들 많잖아. 넌 착하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다 덮칠래?"

"그래도 좋은 걸 어떻해. 진명이 새끼가 자꾸 넘보잖아. 아무리 내가 내거라고 해도 믿질않으니까 어쩔수가 없었다구. 설마 운하녀석이 잭나이프를 가지고 다닐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구."

"죽어라, 이새끼야. 그애가 나이프가 없었다고 성공이나 했겠냐?"

어이가 없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신이 멀쩡한 지 의심스러웠다. 
사내새끼를 두고 니꺼니 내꺼니 다투다 칼까지 휘두르는 사태를 일으키다니.....

"요즘 세상이 미친거냐. 내가 미친거냐?"

"요즘 세상이 다 그래."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인하의 파자마를 입고 코코아를 마시고 있는 운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인하는 씻고 나오다 쇼파에서 졸고있는 운하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서 자. 그리고 너 임마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안들어가도 괜찮은거냐?"

"아버지랑 어머니 외삼촌 농장일 도와주시러 가셨어."

"잘하는 짓이다. 집에 부모님 안계신다고 마음껏 돌아다녔구나. 나돌아다닐것이면 조심이라도 할것이지 사고나 치고 경찰서까지 들어가냐? 내가 없었으면 어쩔뻔 했어?"

"히이이잉.... 정말 이런일 있을 줄 나도 몰랐단 말야. 평소에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그런 애 아니였단 말야. 형이 준 잭나이프도 뺏겨버리고 ....."

"울지마. 그보다 용케도 안 잃어버리고 가지고 있었네. "

"형이 준거잖아. 예전에 형이 그것때문에 얕보는 놈들이 없었다고 해서 나도 가지고 다니면 조금 든든했었는데 ....그걸로 사람을...."

자신이 한 짓이 떠올랐는지 부들부들 떨어대는 통에 인하는 더이상 나무라지도 못하고 운하의 어깨를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아. 그녀석도 이제 함부로 널 덮치지못할거야. 다른 녀석들도 그렇고. 경험이라고 생각해."

"세기는 어떻대?"

"피좀 흘린것 가지고 죽지않아. 뼈가 부러진것도 아니고 내장이 찢어진 것도 아니니까 수혈받고 나면 멀쩡할거다."

"다행이다."

"다행? 동정이 가냐? 나같으면 그정도로 내버려두지않아. 뼈 두서너개는 아작을 내고 그 망할 물건을 잘라버리지."

운하는 전혀 농담같지않은 인하의 말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한번 한다고 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렇게 하고 말테니까. 

"그보다 형."

"응?"

"뭐라고 해야할까? 정말 으음... 그러니까... 형 아름다워진것같다."

"뭐?"

인하가 들고 있던 수건을 뚝 떨어뜨렸다. 

"아름다워져? 아니지? 멋있어졌다는 말이지?"

운하는 울것같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달려드는 인하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봐도 인하는 멋있다기보다는 아름다워졌다. 유학가기전에도 눈길이 가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활짝 핀 꽃같은 분위기였다. 
인하는 기여코 운하의 입에서 멋있어졌다는 말을 받아내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인하는 운하를 집까지 태워다주고 둘러볼데가 있다고 가버렸다. 
눈밑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운하는 미안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었다.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선 운하는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어젯밤의 일이 꿈만 같았다.

평소에도 유난히 자신에게는 너그럽던 세기였다. 하지만 그가 설마 자신에게 그런짓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무엇보다도 세기에게는 신해라고 하는 남들이 부러워할정도로 귀여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운하 역시 애교있고 귀여운 신해를 보고 자신도 저런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젯밤은 정말 알수없는 밤이였다. 
꽤 늦은 시간이였던지라 꼭 나오라는 세기의 전화를 받고 많이 망서리다 부모님도 안계시니 다녀오자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인지라 인적은 드물었지만 별로 두려운 생각은 없었다. 
세기를 찾아 호수를 돌아가니 그곳에는 진명과 몇몇 녀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운하가 다가가자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였다. 게다가 운하는 죽일듯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진명의 시선에 더 부담을 받았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자주 시비를 걸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귀찮을 정도로 괴롭혀대서 만나는 것이 반갑지 않은 친구였다. 
세기가 자신을 끌고 다니지만 않았어도 마주치고 싶지않은 그런 느낌의 아이였다. 

머뭇거리며 어색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려니 세기가 마시고 있던 맥주캔을 집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의 행동을 보며 아무리 미성년자의 음주흡연을 금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구나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운하였다. 그리고 어색해서 다가가지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주는 세기가 고맙기마저 했다. 그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세기가 자신을 끌고가 잔디밭에 눕히고 옷을 벗길때까지도 그녀석이 자신을 덮치려고한다는 것은 생각을 못했다. 
입을 맞추고 멍하니 굳어있는 운하에게 입을 벌리라고 했을때까지만해도 짓궂은 장난인가보다고 믿었다. 세기의 혀가 자신의 입안으로 침범하고 키스가 깊어지자 이건 지나치다 싶어 저지해보려고 하자 세기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그제서야 이것이 장난이 아니며 자신이 그에게 강간당하고 있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몰려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며 세기를 멈추게 해보려고 했지만 운하가 아무리 애원해도 세기는 멈추지않았다. 

운하가 아이들을 돌아보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이들은 술이 취했는지 오히려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보내기만 했고 그속에서 진명이는 자신과 세기를 죽일듯이 노려보기만 했다. 운하는 자신을 마치 거의 창년취급하는 세기가 너무 원망스럽고 창피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버둥거리며 벗겨지는 바지를 잡고 어떻게든 세기의 손을 막아보려고 용을 썼다. 그때 손에 걸린 것이 항상 바지 주머니에 담고 다니는 인하형이 준 잭나이프였다. 
두려워서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세기를 찌르게 된건지 잘 기억이 나지않았다. 자신의 손을 타고 흐르는 뜨듯하고 질퍽한 느낌에 비명을 질러댔다. 
아이들이 멈칫하더니 뒷걸음질쳐 도망갔고 진명이가 다가와 자신의 위에 쓰러져있는 세기를 옆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운하가 본 것은 어둠속에서 검무스름하게 젖어가고 있는 세기의 옷이였다. 
운하가 발작적으로 우는 통안 진명이 구조대에 전화를 했고 운하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정신을 차리니 경찰서에 앉아있었다. 
계속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그 손을 타고 흘러내리던 피의 감촉이였고 형사의 다그침에도 울면서 내잘못이라고만 했다. 

하룻밤의 악몽이라고 해도 끔직할판에 그것은 현실이였다.
경찰서를 나와 서있는 지금 생각해봐도 손발이 경기라도 걸린 듯 떨리고 심장이 과속으로 달렸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세기를 어찌볼것인지가 가장 걱정이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수줍음이 많은 자신에게 짓궂기는 했지만 잘해주었던 아이였다. 어느새 다른 아이들도 그런 세기와 다니는 자신을 인정해주었고 소심한 성격으로 친구도 사귀지못할까봐 걱정을 하던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릴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세기에게는 고마움과 함께 강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던 운하였다. 세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던 자신은 그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세기와 잘 어울려다니는 진명이 자신을 괴롭히며 세기와 어울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런 것을 모두 참아낼 정도로 자신은 세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젯밤에 자신은 그런 세기를 찔러버린 것이다. 
인하형은 잘했다고 하지만 결국 다쳐서 입원을 하게 된것은 세기가 아닌가.
운하는 세기에게 미안한 마음과 이제는 그가 자신을 미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교실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문을 열면 어젯밤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게된 아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걱정스러워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이대로 그냥 집에 가버릴까를 고민하고 있으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덥썩 어깨를 쳤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동명이다.
진명이의 쌍둥이 동생으로 진명이와는 다르게 모범생이고 자신에게도 그리 시비를 걸지 않아 잘 지내고 있는 편이였다. 

"새끼 쫄기는. 세기녀석 실려보내고 경찰서까지 다녀온 놈이 왜 이렇게 새가슴이냐? 생긴건 곱상한게 한가닥한다했더니 헛소문이냐? 하여간 이번 사건으로 너에게 흑심 품은 놈들 뜨끔 했을 걸."

"흑심?"

"흑심몰라? 말그대로 새까만 마음말야. 널 여자애들처럼 어떻게 해보겠다고 벼르던 놈들 꽤 됐는데 눈치도 못챈던거냐?"

"저기... 난 여자 아니거든?"

"병신, 누가 너더러 여자라더냐? 요즘엔 여자애들만 당하는 줄 아나본데 사실을 말하자면 같은 사내새끼에게 당했다고 창피해서 말을 안해서 그렇지 그런 일 꽤 많다 너. 게다가 넌 여자애들 저리가라할 정도로 예쁜데다 아담하기까지해서 차마 여자애들에게 데쉬하지못하는 새끼들이 틈만 노리고 있었다고. 이번 일로 더이상 너에게 흑심 품었다가는 세기새끼처럼 당하게 될거라고 겁먹었을걸."

자신의 말에 창백하게 질리는 운하를 보며 동명은 혀를 끌끌끌 찼다.

"둔한 새끼. 이러니 진명이새끼가 속이 타지."






  세기는 세성이 툭 건드린 상처의 아픔에 진저리를 쳤다. 머리속이 텅 비고 발끝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으으으윽.. 뭐.야. 아파죽겠구만."

부들부들 떨면서 금방이라도 달려들듯이 노려보는 세기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세성이 콧웃음을 쳤다.

"잘한다. 오죽이나 못났으면 칼이나 맞고 다니고."

"아이씨. 싸운 거 아니란 말야."

"싸운게 아니면? 그 뱃가죽은 왜 찢어졌는데?"

"진짜로 찌를줄 몰랐단 말야. 평소에는 어리버리해서 소심하기 그지없더니 꽤 강단있는 짓을 했다니까. 그점도 귀엽지만."

세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성은 또다시 세기의 머리통을 갈겨버렸다. 
칼맞고도 좋아서 싱글거리는 모습이라니 자신도 미친놈 소리는 여러번 들었지만 이놈만큼은 미치지않았다고 단정짓는 세성이였다. 

"죽어 새꺄. 칼 맞고 좋아서 헤죽거리냐? 내가 죽여주리? "

"그만 때려. 상처 덧나겠다. 큰형도 그 개차반인가하는 형이 찔렀으면 안웃었을것 같아?"

"뭐?"

세기는 딱 굳어버리는 세성의 모습에 아차하고 얼른 입을 막았다. 세준에게 그렇게 협박을 받았으면서도 위기의식이 부족한 탓에 그만 그 이름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니가 개차반을 어떻게 알아?"

"왜? 소문도 요란했다구만. 우리학교 선배로 형이 죽어라고 쫓아다녔지만 개무시했다고."

자신을 협박하던 세준의 기분을 만끽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세기였다. 의심이 가득한 세성의 눈빛에 세기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정말 그것뿐?"

세성은 세기가 선뜻 대답을 하지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눈이 날카로와졌다. 
원체 제멋대로에다 막내라고 할말안할말 구분못하고 자기가 하고싶은 말은 다하고 살아도 주위에서 특히 가족들은 그것이 재미있다고 더 부추키고는 하였었던지라 남에게 아쉬운소리를 한 적도 없고 남을 배려하느라 거짓말이라는 것을 해본적도 없는 세기였다. 무작정 우기면 장땡이였고 주위에서는 그 고집을 당하지못하고 결국에는 들어주고야 말았다. 한마디로 좋게 말하면 정직한 것이였고 나쁘게 말하면 입이 걸레였다. 

"화앙 세기이야아."

잔뜩 힘이 들어간 세성의 부름에 세기가 움찔거린다.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을 하는 세성이였다. 어떻게든 세성의 시선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안되었던지 우이씨하며 입을 열어버린다.

"아이씨 나도 몰라. 앞으로 큰형이 내 용돈 책임져줄거야? 차도 빌려줄거지?"

"이게 정말. 맞아야 정신 차리겠구만."

"나 때리면 크게 후회할걸."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안색을 보니 분명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기는 생각에 잠기는 큰형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사실을 큰형에게 말한 걸 알면 세준은 둘째형에게 이르기야 하겠지만 솔찍히 금전감각이 없는 큰형이 용돈을 책임져준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할때마다 줄것이 분명했고 덤으로 차도 빌릴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잘은 모르겠지만 일석이조인 것이다. 

"뭐냐?"

넘어왔다.

"우선 약속부터 해."

"너 시시한 내용이면 내손에 죽는다."

"절대로 그런 일 없어."

"좋아. 뭐냐?"

" 날 찌른 녀석이름이 정 운하거든?"

"그래서?"

"그런데 그녀석을 데려간 사촌 형 이름이 정 인하래."

세성이 움찔 놀란다. 세기는 쾌재를 부르며 흥이 나서 떠들었다. 

"작은 형 말로는 그 형 학교때 별명이 개차반이랬다나? 하여간 세준이형도 잘아는 인물이더라고. 으악..콜록콜록.. 갑자기 멱살을 잡으면 어떡해?"

"정말이냐? 너 거짓말이면 가만 안둔다."

"진짜야. 작은 형 말로는 자기 동생 덮쳤다고 나를 만나면 반쯤 죽여놓을 거라고 조심하라고 했다던데 뭘."

"확실하군. "

"그렇지? 작은 형이 큰형에게 말하면 둘째형에게 말해서 내 용돈 한푼도 받지못하게 할거라잖아. 그런데 이제 큰형에게 말했으니 큰형이 책임져."

세성은 병실안을 왔다갔다하며 무언가를 궁리를 하더니 불쑥 다시 세기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너 그 운하인지 하는 애 전화번호 내놔."

"싫어."

"뭣? 왜?"

"보나마나 형 운하 찾아가서 그 인하인지 하는 형 주소며 전화번호 대라고 운하 다그칠거잖아. 운하가 얼마나 겁이 많은데 큰형때문에 날 더 무서워하면 어떻게해?"

"이놈이..."

"그리고 생각 좀 해보라구. 형이 운하가 찾아가서 다그친 후에 운하가 그 형한테 형 만났다고 말한다면 그형이 가만히 있겠다. 다시 도망가버리거나 숨어버릴걸."

그제서야 세성이 진정을 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세기의 말에 동감한 것이다. 

"그러니 나랑 손 잡자. 사실 세준형이 내가 운하 덮치려다 칼 맞은 걸 작은 형에게 이른다고 협박했거든. 그 인하인지 하는 형애인은 성격이 대단해서 둘째형 만나도 별걱정없겠지만 운하는 둘째형보기만 해도 울어버릴걸? 그러니까 둘째형이나 세준이형 몰래 우리 두사람 합동작전 어때?"

용돈도 그대로 받을 수 있고.....

"너 전교 꼴등맞냐? 이럴땐 정말 기가 막히게 머리 돌아간다?"

씨익 웃는 세성의 표정에 세기는 낄낄낄 웃었다. 기다려라 운하야. 맛있는 것 많이 사줄께.


***********




  "나 세기 형이다. "

운하는 교문 앞에 서서 많은 여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던 남자가 설마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던지라 그가 갑자기 자신의 앞을 불쑥 막아서며 말을 걸어왔을 때는 너무 놀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정 운하 맞지?"

자신의 이름을 확인차 물어보는 그의 태도에 더럭 겁이 났다. 
설마 괜찮다고 했던 세기에게 무슨일이 생긴건 아닌지 걱정부터 되었다. 

"저기 세기에게 무슨일 생겼나요?"

그렇지않아도 하루종일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접촉에 시달리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젯밤일을 되새기며 세기를 걱정하고 있던 운하였다. 세성은 걱정스런 빛을 감추지못하고 어쩔줄몰라하며 물어오는 운하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느꼈다.
한눈에 보아도 인하의 고교시절의 모습이 어렴풋이 나타나 금방 저아이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하처럼 그 깐죽거리는 시선은 아니였지만 예쁘장한 외모가 눈에 익었다. 그 닮은 외모로 세기를 걱정하는 모습이라니.....
인하가 저런 모습으로 자신을 걱정해준다면 상상만해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아마 세성의 이런 생각을 눈치챘다면 그 싸가지녀석은 콧웃음을 치며 미쳤냐고 이죽거렸을 것이 분명했지만 상상이야 자신의 마음아니던가. 

"정신은 차렸는데 그게 너에게 한짓때문인지 밥도 안먹고-다른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는 순간 뻥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지만 운하는 너무나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성격이라 잘 넘어갔다. 한마디로 이녀석은 사기당하기 딱 좋은 성격인 것이다.-창밖만 쳐다보고 있단다. 의사선생님이 빨리 회복하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녀석이 전혀 의욕이 없네? 네가 같이 가주면 안될까?"

누가 들으면 신파 찍냐고 할 만한 말을 하면서 운하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세성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자신의 말이 계속 될수록 놀란 듯 동그랗게 변하던 눈이 말이 끝나갈 무렵 금방이라도 울 듯이 물기가 어리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저녀석 세상 살기 정말 힘들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저리도 순진하고 여린 건지.... 저녀석은 드라마를 보면서 슬픈 장면이라도 나올라치면 같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할 성격이 분명했다. 인하녀석하고 딱 반만 섞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세성이다. 

"갈게요.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때문에 입원해서 저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와우, 저것봐라. 어쩌면 저리도 그 싸가지와는 다르냐? 
어떻게 저런 동생과 같이 자랐으면서 그녀석의 성격은 그렇게 다를수가 있는 걸까? 

"그런데 그 형인가하는 사람이 세기녀석 만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하지않았어?  혹시라도 세기가 널 불러낸 걸 알면 병원에 찾아와 난리피울텐데."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이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인하녀석이라면 아마 병원까지 찾아와 세기의 목을 졸라버릴 녀석이였으니까. 

"저기.. 인하형에게 말하지 않을게요. 형도 귀국한지 며칠되지않아서 아직 바쁘거든요. "

세성은 순진하게 자신의 유도대로 털어놓는 운하의 모습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나운 호랑이의 동생은 순둥이 새끼 고양이라니.....
잘만하면 저 고양이를 미끼로 호랑이를 낚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다려라, 정인하. 4년전의 복수를 해주마.





  세기는 머뭇거리며 병실로 들어서는 운하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걸 느꼈다. 
물기가 젖은 눈망울이며 질끈 깨물어 빨개진 입술이며 저 입술에 자신이 키스를 했다고 생각하니 머리속에서 불이나는 기분이였다. 사실 진명이의 부추킴에 넘어가 운하에게 전화해 호수공원으로 불러놓고도 진명이에게 증명만 해보일 생각이였지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진명이의 그 노골적이고 집요한 시선을 보니 이대로두면 머지않아 정말 운하를 그녀석에게 빼앗길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그날 밤 호수공원에 앉아 진명이에게 운하 좀 그만 괴롭히라고 충고하고 있는데 그 옆에 같이 있던 놈이 낄낄낄 웃으며 그건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아이 괴롭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펄펄펄 뛰면서 부정을 하고 주먹이라도 날렸을 진명이가 세상에 얼굴을 붉히며 맥주만 들이키고 있었다. 진짜냐며 놀리는 다른 친구들의 반응과는 달리 세기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가슴에 비수라도 찔린 듯 아찔한 감각에 눈을 감았다. 터질 듯 두근거리는 심장과 오싹해진 감각으로  운하와 진명이놈이 같이 나란히 서있는 장면을 떠올리자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신해와 진명이가 같이 있는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조금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나기는 했지만 운하를 생각했을 때처럼 아찔하고 숨이막히는 감각은 없었다. 

초조하게 진명이에게 포기하라고 운하는 내거라고 했다.
진명이 녀석이 사납게 노려보며 믿으려 하질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야유를 보내며 진명이새끼 놀리지말라고 저녀석 심장마비걸리는 꼴 보고싶냐고 놀렸다.
하지만 정작 심장마비 걸릴 것 같은 건 세기 자신이였다. 
믿지않겠다는 진명의 말에 상관없다고 하자 증명해보이라는 것이 아닌가. 

운하에게 전화를 걸면서 세기는 이사실을 운하가 알면 얼마나 놀랄것인가.
행여라도 그건 자신의 거짓말이라고 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으로 불안했다. 한마디라도 잘못나오면 진명이놈의 눈빛을 보니 바로 운하에게 접근할 것 같아보였다. 애써 태연한 척 운하를 불러냈으면서도 불안해서 맥주를 마구 마셔댔다.
운하를 기다리며 내린 결론은 운하가 입을 열 기회를 주지않고 그녀석이 자신의 것임을 증명하면 된다는 생각이였다. 

공원에 나온 운하는 진명을 보더니 잔뜩 긴장해서 다가오려 하질 않았다. 
마시고 있던 맥주캔을 던져버리고 다가가자 얼굴이 밝아지는 것이 곧 자신이 벌릴 짓을 생각하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었지만 등뒤에 느껴지는 진명이의 따가운 시선에 망서릴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에 끌려 잔디밭에 눕혀지면서도 이 순진한 녀석은 모든 게 장난인줄 아는 지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 
키스를 할때까지도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만 갸웃하는 모습에 정말 애가 달았다. 
왠만큼 증명하고 나면 멈추려고 했는데 그만 그게 서버렸다. 

키스가 깊어지자 그제서야 놀라서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며 제딴에는 벗어나려는 것같았지만  자신의 것을 비벼대는 통에 세기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파득거리며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운하의 몸짓에 자극받아서 이왕 증명하는 김에 못까지 박아버리자는 결심에 울며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는 운하를 내리눌렀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평소에는 상상도 못했던 짓을 저지른다는 것을 미처 상상도 못한데다 운하가 잭나이프를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더더구나 알수가 없었다. 

칼에 찔리고 나서도 아픈 것은 둘째치고 창백하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보다 더 놀라고 아파하는 운하가 더 걱정스러웠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손을 뻗으려할때마다 발작적으로 울어대는 운하 때문에 입도 떼지못하고 곧 의식을 잃어버렸다. 깨어나니 병원이였고 보이는 건 세준형의 반갑지않은 얼굴이였다. 

지금 운하가 얼굴 가득 죄책감과 걱정을 담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심장이 아릿아릿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왜 진작에 자신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열이 오르는데...
금방이라도 울듯한 운하를 일어나서 위로해주지못하는 자신이 답답할 지경이였다. 
운하의 뒤에서 세성이 자신의 표정을 보았는지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젠장, 얄미운 형....

운하의 눈이 침대옆에 걸린 복막의 피를 빼내는 피주머니를 쳐다보더니 또 부들부들 떨어댄다.
저렇게 겁이 많아서야 원 둘째형보았다간 기절할게 분명하군. 
누워있는 자신보다도 더 창백해진 얼굴에 세기가 한숨을 내뱉었다. 

"진정해. 보기보다 위험하진 않아."

여전히 피주머니에서 시선을 떼지못하는 모습에 세성이 운하의 등을 감싸 침대옆의 간이 침대에 데리고 와 앉혔다.
그모습마저 세기의 눈에는 거슬렸다.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어? 진명이 새끼 이상한 말 하지않았지?"

"응? 무슨 말?"

"그 새끼, 조심해. 보이는 대로 피하고 마주치지마 알았지?"

"왜?"

"바보야,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

여전히 이해되지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더니 운하의 뒤에 있던 큰형이 키득키득 웃어댔다. 망할 형. 서로 도와주기로 했으면서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은 뭔가말이다. 

세성으로서는 정말 운하가 인하의 동생이 맞는 지 의심스러운 심정이였다. 이런 상황이였다면 인하는 어떻게 행동 했을까?
아마 병실안에서 담배나 뻑뻑 피워대면서 누워있는 환자의 성질을 박박 긁어서 복장을 터트려놓을것이 뻔했다. 

"큰형, 나가줘."

"왜?"

"이녀석에게만 할말이 있어."

"내가 들으면 안되는 말이냐?"

"얼른 나가."

"성질 하고는 ..."

세성이 밖으로 나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스케줄을 확인한 후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현장부터 나가보기로 했다. 
하여간 세기의 고생이 눈에 보여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인하야, 아무래도 너와 난 인연인가보다. 네가 얽히지 않으려고 해도 이런식으로 다시 얽히는 것을 보니.....
기대하거라,  앞으로 열심히 따라다녀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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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 정 운하,이제부터 넌 내 깔이다. 알았지?"

"뭐? 미쳤어? 신해가 알면 어쩌려구 그딴소리를 하는건데?"

운하는 세기의 말을 듣자마자 신해의 얼굴부터 떠올렸다. 그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마 이사실을 알게되면 분명 자신을 원망할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세기가 정상이 아닌것처럼 여겨졌다.
자신이 배를 찌른 것이 아니라 머리를 친 것인가싶었다. 

"신해와는 헤어질거야."

"미쳤어!!!!!정신차려. 갑자기 왜 그러는데?"

"다 널 위해서야."

"날?  왜?"

"임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명이새끼가 내가 너에게 했던 짓을 할텐데 그래도 괜찮냐?"

순간, 세성이 앉혀주었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운하가 화다닥 일어나더니 뒤로 물러서는 모습에 세기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저 무방비하고 경계심없는 놈은 이제까지 세기가 어떻게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이 무슨일을 당했는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가만히 내버려둘수가 없는 것이다. 
말은 운하 너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운하녀석을 진명이새끼에게 빼앗기고 싶지않은 자신때문이였다. 운하는 자신의 말에 신해를 떠올리고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망서리지않고 운하쪽을 선택할 세기였다. 

"너... 너 ... 왜 그랬어?"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제딴에는 쏘아본다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지만 세기의 눈에는 앙알거리는 새끼고양이같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네가 그래보았자 하나도 무섭지않다고 이죽거리고 싶지만 운하의 표정이 하도 심각하여 차마 혀끝까지 나온  비웃음을 삼켰다. 저지른 일이 있으니 더이상 겁먹지않도록 달래야겠다는 자기딴에는 엄청 힘든 결심을 하는 세기였다. 
아마 다른 일로 무언가를 참으라고 한다면 차라리 사고를 치고 말 세기가 아니던가.

"진명이새끼가 자꾸 널 가지겠다고 하잖아. 설마 나보다 그녀석이 그러길 바랬냐?"

"미쳤냐? 진명이는 정말정말 싫다구, 맨날 이죽거리고 시비걸고 끄덕하면 밀쳐서 넘어뜨리고나서 웃고..."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는지 마구 불만을 터트리는 운하의  찌푸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라이벌만 아니라면 진명이새끼 불쌍하다고 할만했다. 저 둔탱이는 자신을 알리고 싶은 진명의 노력을 일명 괴롭힘이라는 단 한마디로 일축해버리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새삼 떠오르는 동정심을 꾹꾹 밟아버리고 세기는 운하의 불만을 더욱 부추켰다. 
진명의 마음을 아는 그로서는 비겁하기는 하지만 불온한 싹은 미리 제거하자는 산뜻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진명이새끼에게 넌 내꺼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내가 없을 때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때만은 널 건드리지 않을거야. 내가 없는 동안 그 새끼가 무슨짓을 하더라도 내가 말려줄 수 없으니까 피해다니라는 거야. 알았지?"

세기의 재촉에도 운하는 쉽게 대답하지못하고 망서리고 있었다. 그모습에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세기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지만 굳이 신해하고 정말 헤어질 필요까지는 없잖아."

아무래도 세기의 말대로 하기에는 신해의 문제가 걸리는 모양이였다. 저새끼 지 좋은 대로 해도 될텐데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원....

"내가 신해하고 헤어지지않으면 진명이새끼 너와 내가 사귄다는 말 믿을 것 같냐?"

운하의 안색이 핼쓱해진다. 신해에게 미안한 감정과 진명이의 의도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확인을 받아두지않으면 저놈 자신이 불리하더라도 신해때문에 세기자신의 의도를 파도낼 기미였다. 

"그리고 어차피 신해하고는 헤어질 생각이였어."

"아니 왜? 신해처럼 귀엽고 애교있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다들 부러워했잖아. 나도 그런 여자친구 있었으면 좋겠다고...."

세기가 무섭게 노려보자 그제서야 말끝을 흐리는 운하였다. 세기는 운하가 신해같은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한마디에 그냥 좋은 감정을 가졌던 신해에게마저 강한 라이벌 의식이 생기는 걸 느꼈다. 왜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싶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였다. 

"하여간 싫증났어. 지금은 너만 볼테니까 너도 나만 봐, 다른 여자아이들이나 다른 새끼에게 눈 돌리면 알지? 이거 장난아니다. 바람만 피워봐, 그새끼도 가만 안두고 너도 가만 안둘테니까."

세기는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운하의 표정에 인상을 팍 찡그렸고 운하는 움찔하더니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세기는 만족한 듯 얼굴을 피고 웃었다. 

세성이 근처의 현장을 돌아보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본 모습은 사람들이 병문안 선물로 가져온 음식들을 열심히 운하에게 먹이고 있는 세기의 모습이였다. 운하는 세기의 눈치를 살피며 음식들을 주는대로 먹고 있었다. 
세성은 세기의 모습이 어린양을 살찌워서 잡아먹으려는 늑대의 모습같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오랫만이야, 정 인하."

인하는 상담선생이 타다준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불쑥 자신 앞에 모습을 나타낸 미현의 모습에 사레가 들려 한참동안이나 콜록거려야했다. 그리고 간신히 진정을 시키며 원망스러운 듯 미현을 노려보았다. 
미현은 자신때문에 인하가 사레가 들렸다는 걸 알면서도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않았다. 
그저 히죽 웃으며 괴로워하는 인하를 쳐다보았을 뿐이다. 

"어떻게 네가 이곳에?"

인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미현에게 강한 의문을 드러냈다. 

"내가 말하지않았었나? 여기 우리 아버지 재단이잖아. 네 이력서 보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다. 그동안 꽤 여러곳을 돌아다녔나보더라? 미준이가 얼마나 찾았는데 꼬리조차 잡지못한걸 보니...."

미준이란 말에 인하가 움찔거렸다. 미현은 여전히 저 싸가지없지만 대범한 인하가 아직도 미준에 대한 그 감정을 접지못한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지나면 약이될거라고 생각했지만 꽤 충격이 컸는지 여전히 인하는 미준에 대한 원망을 접어버리지못한 모양이였다. 

미준은 인하가 대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한 중학교 학생이였다. 
이럴때부터 약하고 조그마한 미준은 부모님에게 있어서는 애지중지하는 오대독자 아들이였고 그만큼 불면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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