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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 in New York 01
최고관리자 0 46,851 2023.08.21 13:54
karma in New York 01 

by 경랑 


『Sahara에서 찾은 oasis』 
라고, 불리운다고 했다 - 그의 목소리는. 

청량함, 투명함, 살아있는 보석, 신의 목소리. 
인간의 성대가 내는 소리중 최고의 찬사를 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지나치게 화려한 수식어가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했다. 

언젠가는 최고중의 최고가 될 목소리. 
완벽하다고 표현될 만한 것이라고도 했다. 


나에게 그의 첫 목소리는, 
넓은 - 극장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그의 노래는, 
섬뜩한 한기마저 느껴지는 『두려움』이었다. 

지독하게도, 찼다. 
한 순간, 심장이 멈췄다고 생각했을 만큼. 

……두려웠다. 




「stop!」 
마음속으로 욕을 내뱉으면서, 상대의 말을 끊었다. 
항복, 항복이다. 

Shit~! 
말발로 먹고사는 인간들,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변호사 - 그 악독한 무리에서도 '달변'으로 유명한 인간을 상대로 15분을 버텼지만, 결론은 단 하나. 
God-Kevin의 뜻대로. 

「Thanks, honey~」 
Kevin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띄운다. 
저건, 득의(得意)다.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완료되었음을 확신하는. 
그러면서도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인가? 허~ Kevin에게 내 의사가 무슨 소용있겠어? 
하지만, 네가 알아둘 것이 있는데 말이지 Kevin. 
「확답은 안 했어.」 
「에~?」 
「내가 허락한 것은, 한/번/만/나/보/겠/다 라구」 
「그건 말이 틀리잖아 Rick」 
순식간에 당혹스런 표정과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저 사람이, 법정에 선 인물과 동일 인물인지 궁금할 때가 있기는 하다. 저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봐서는 누군가와 '말상대'하는 것도 힘겨울 것 같은데 말이지. 
선하고, 좋은 사람이다, Kevin은. 
「만나기는 하겠지만…」 
「하겠지만?」 
「요는, 네 친구 Bob의 눈에 내가 차겠느냐는 거야.」 
「그 녀석이랑 네가 선보는 것도 아닌데 눈에 차다니?」 
「그 Bob과 난 만나서 친목을 도모하자는 게 아니야. 알고 있지?」 
「뭐가 문젠데? 증권매매인을 만나서 상담하는 것일 뿐이야.」 
「여기 인구의 절반은 증권매매인이야. 고객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고를 권리가 있다구.」 
Park Avenue의 apartment hotel에서 살 정도의 재산이라면 더더욱~ 이란 말은 삭제했다. 
「지금 Bob은… 아니, 그냥 만나기만 해 봐. 너처럼 유능한 사람을 거절할 리 없어.」 
「어지러우니까 띄우지 마. 언제가 좋아?」 
PDA 전원을 켰다. 약속시간을 언제쯤으로… 
「어?」 
「상담말이야. 내가 그쪽으로 연락을 따로 해야 해?」 
「아, 상담. 그게 말이지…」 
Kevin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외면한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으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보게 된 표정이다. 
가장 최근의 것이 『사귀지 않을래?』라는 말을 했을 때였었지. 정확하게는 그 물음에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대답했을 때였지만. 
꽤, 귀여운 표정이라는 것을 본인은 알까? 눈썹을 찌푸리고, 안절부절 하는 표정으로 『나 지금 곤란한데…』라면. 
어? 
곤란해? 
뭐가? 
「왜? super star 께선 나같은 증권매매인을 직접 만나시기 곤란하신 거야?」 
비껴졌던 시선이 다시 마주친다. 

Kevin의 의문이 담긴 표정이 아니더라도, 
Richard Kiyose의 trademark인, 차분하고 점잖은 말투가 아닌 것은 안다. 날이 서서 냉담하게 들리겠지. 
Robert Lee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그랬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하지만, 실제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은…절친한 친구라는 Kevin의 자랑을 듣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는 다르다. 

「기분 나쁜 일 있어?」 
잘 짜여진 대본처럼, 예상했던 질문이다. 
「아니-」 
「그런데 왜 그래? Bob이 회사까지, 널 만나러 오지 않아서 기분이 상해?」 
그럴리 없다. 
고객의 형편에 맞춰서 내가 움직이는 일이 드문것도 아니고…. 단지, 그를 - 『Sahara에서 찾은 oasis』를 만나는 것이 내키지 않을 뿐이다. 

「피곤해서 그래.」 
전형적이고 성의없는 대답에, 『묻지마』라는 고전적인 표현이다. 
그래도 Kevin은 뒤로 물러날 것이다. 
「내가 네 사정을 생각 못했어.」 
「아냐, 너니까 투정부리는 거야.」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Bob Lee를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미안해.」 
한숨과 함께 사과의 말이 나온다. 
Kevin이 아니었다면 그를 만나야 할 일은 없었겠지만, 그 이유를 전적으로 Kevin에게 전가시키는 것은…명백한 투정이다. Kevin은 영문도 모르고 내 투정을 받아야 하는거고. 
「괜찮아」 
Kevin이 어깨를 두드려준다. 
「너 편한 시간이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을거야.」 
「그럼 어디로 가야하지? 공연중인 극장으로 찾아가야 하나?」 
「어?」 
이봐 Kevin, 그런 표정 멍~청~해 보인다는 거 알아? 
「season이잖아? 공연중 아니야?」 
「잠시… 쉬고 있어.」 
「그래? 그럼 집으로 찾아가야 하나?」 
쉬고 있으면서,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 거로군 그래. 
「그래야 할거야. 가끔씩 외엔 바깥에 나설 생각은 하지 않거든.」 
「그럼, 내일이나 모레쯤 내가 찾아가 볼게.」 
「고마워, 부탁 들어줘서.」 

Kevin의 따뜻하고 나긋한 목소리와는 다른, 
차가움과 섬뜩함이 느껴지던 목소리. 

「그게, 부탁이었어? 난 강요당하고 있는줄 알았는데?」 
「이런~~~ Rick~」 

『Robert Lee』라는 존재도 그렇게 차갑지 않을까?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다. 



「Richard Kiyose」 
명함을 소리내어 읽으며, 삐딱한 미소를 짓는다. 

근대식의 대리석 건물. 
Central Park에 면한 최고급 apartment hotel. 
그 중에서도 최상층. 
육중한 문을 연 사람은, 
기억에 남은, 『그』였다. 
Robert Lee - 신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배우. 
gossip을 장식하던 사진 그대로, 피처럼 붉은 머리를 가진. 

「Kevin의 친구라고?」 
명함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가 물었다. 

가까이에서 들은 그의 목소리는, 의외였다. 
가벼웠다. 
지나칠 만큼…공중에 떠 있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그에 대한 선입견이던 『섬뜩함』은 사라졌지만… 

「변호사와 증권매매인이 무슨 관계가 있어?」 

귀가 닳도록 들었던 『Dandy Bob』에 대한 사항 역시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우아... 
sexy... 
소파에 몸을 묻고, 다리를 가볍게 떨기까지 하는 저 인물 어디가… 우아하고, 섹시하며, 멋진 Bob이란 거냐, Kevin. 

도대체…이 사람의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던 것일까. 

「변호사와 뮤지컬스타와도 별 연관성은 없어 보입니다만」 
미래의 고객이 될 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마르고 잘생긴 얼굴에 『이것봐라?』라는 의미가 담긴 표정이 떠오른다. 
「당신, 혼혈? 아니면 2세? 3세?」 
「Mr. Lee」 
기분이 좋질 않다. 표현하자면, 벌집을 건드린 느낌? 
「어려운 질문 아니잖아. 궁금하니까 어서~」 
「2세입니다. Mr. Lee」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귀찮아진 기분 
「Kevin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Mr. Lee」 
「친구? 애인? Kevin이 동성애자인건 알고 있지? 당신도 동성애자야? 아니면 양성애자? 이성애자?」 
「Mr. Lee…」 
「몰랐어? 아님, 알고 있었던 거야? 동양인들은 도통 표정을 읽을 수 있어야 말이지… 인형 같단 말이야.」 
「Mr. Lee, 전 업무차 온…」 
「없어.」 
…? 
없어? 
그게, 무슨 뜻? 
「Kevin이 아무 말 안 했나 보네? 나 한동안 일을 안 해서… 아, 내가 배우인 건 알고 있지? 좀 쉬었더니만 파산 직전이야. Kevin 그 자식이 당신이랑 의논해 보라고 한동안 닦달해서 만나기는 하지만… 난, 돈에는 관심없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잖아?」 
파산… 
파산…… 
Park Avenue의, 
금싸라기 땅위의, 
최고급 apartment hotel의, 
최상층에 사는 사람이……파산? 
「Mr…」 
「재미없는 돈 이야기 보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나 해 봐. 잘생겼네… 정말로 Kevin과는 어떤 사이야?」 

내가… 
이런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건가? 
바닥 없는 늪에 빠져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과도 같은 기분을…느꼈다는 거야? 

그땐… 
내가…미쳤던 거다. 

「Mr. Lee」 
이를 악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한바탕 쏘아붙이고 싶다만, 
이 사람은 Kevin의 절/친/한/친/구 다. 
Kevin의… 
나와 사/귈/지/도 모르는 Kevin의. 
「아, Mr. Lee같은 딱딱한 호칭으로 부를 필요 없어. Robert라고 불러, 아니 Kevin의 친구라니까 Bob이라고 불러도 좋아.」 
…… 
Bob은 무슨… 
Bobbie가 딱 알맞을 정도로 꼬맹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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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 in New York 02 



by 가 규 





초면에, 
『그럼 해 보시죠.』라는 한 마디에, 
서슴없이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자신을 대상으로 fellatio를 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이, 
여러 달 전에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으며, 
한 번쯤 진지하게 사귀어 볼까 하고 생각 중이던 Kevin 의 절친한 친구라면.... 

일전에 
Tony상을 수상했다던 Robert Lee 라는 사람의 공연이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 일이 너무 충격적이서 웬지 만나기가 꺼려졌었지만 
Kevin의 끈질긴 부탁 때문에 마지못해 투자 상담까지 해 주었건만, 알고보니 
대놓고 『나 없어, 돈. 파산 당했걸랑~.』이라며 
요염하게 눈웃음이나 치며 기대오는 가벼운 인간이었다면.... 


미친 개에게 물린 셈치고 - Kevin의 얼굴을 봐서라도 - 그냥 잊어 버리자, 고 
그 날 이후로 몇 번이나 다짐해 왔었는데 
이런 식으로 어이없이 이 인간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Kiyose는 내심 혀를 찼다. 

「뭔가 갖고 싶은 거라도 있는거야, my dear?」 

보석상의 진열 유리창에 
거리낌없이 다가 와서 자신의 팔짱을 낀, 
조금 낮은 위치에서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두꺼운 낯짝이 비친다. 

「가지고 싶다면, 사 주시겠습니까?」 

Kiyose는 my dear, 라는 말에 심사가 꼬여서 삐딱하니 대꾸했다. 
주로 연인에게 사용하는 귀여운 사람이라는 호칭 따위 
이런 인간에게는 죽어도 듣고 싶지 않다. 
고작 fellatio 한 번에 어딜 감히 기어 오르려고. 
그런 일 할 때마다 애인을 만들었다면 그 뒷수습에 자신이야말로 파산일거다. 

「응, 좋아 ♡ 
눈 여겨 본 것이 있다면 말해. 내가 다 사 줄 테니까.」 

「 ……」 

망설임도 없이 튀어 나오는 대답에 '그 돈, 어디서 났습니까'라고 추궁할 뻔했다. 
그것을 깨닫자 Kiyose는 저도 모르게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어디서 나든 말든 자신과 무슨 상관이라고 …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묘한 불쾌감에 사로 잡혔다. 
역시나 이 'Robert Lee'라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되어 먹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거기다 지독한 거짓말쟁이. 
매달 유지비만 해도 엄청 들 것 같은 그런 호사스러운 집에서 
- 몇 년째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 살고 있는 인간이 '돈이 없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자신도 자신이지만, 
더 심한 것은 '파산'했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늘어 놓은 이 사람이다. 
그 정도의 부자라면 이미 자산 관리자쯤 서너 명은 거느리고 있을 만도 한데. 
단순히 이 사람은 자신과 투자 상담 따위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저 악질적인 장난을 치고 싶어서 자신을 농락한 것 뿐이었다. 
Kevin의 절친한 - Robert Lee라는 사람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 친구라는 이 사람은 명백한 heterosexual인 주제에 동성인 자신에게 그렇고 그런 짓을 한 것이다. 
다른 사람처럼 바쁘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 
진심으로 사귀는 친구도 없어서, 
- 그 따위 성격을 뜯어 고치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없을 거다.- 
내내 심심해 하던 도중 자신이 재수없게 그에게 발견당해 걸려 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Kiyose는 다시 한 번 머리끝까지 불쾌함이 치밀었다. 
그 날의 일을 다시 되새겨 보자면, 
의욕은 대단했지만 technique은 한 마디로 꽝, 이어서 
자신이 그의 첫 번째 동성애 놀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쯤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장난으로라도 남의 penis 따위 만지작거릴 생각을 못할 텐데 
어지간히도 적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나 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됐습니다.」 

아무래도 여동생의 생일 선물로는 다른 종류의 것을 준비해야 겠다. 
하필이면 보석 가게 앞에서 이 인간을 만나다니, 열나 재수 없어. 
이 인간이 한 번이라도 쳐다 본 보석을 고른다면 여동생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거다, 라는 
스스로도 유치한 생각을 해 보며 Kiyose는 자신의 팔에 매달린 몸뚱아리를 거칠게 떼어 냈다. 
아무리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라고는 해도 과도한 노출이었다. 
Robert Lee가 맨몸에 걸친 거라고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망사 천 하나와 가죽 short pants. 
그리고 머리 위로 짙은 sunglasses. 
몸매에 상당한 자신이 있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뭐 그럴 만도 하지만 … 
정말 너무 하는 군. 
Kiyose는 태연한 척, 
가슴의 분홍빛 돌기와 그 아래 섹시하게 자리잡은 배꼽에서 가까스로 시선을 거두어 들였다. 

「이봐, 그러지 말고 …」 

「됐습니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오늘은 본사에 잠시 들렀다가 퇴근해야 한다. 

「나한테 그런 식으로 돌아서지 마!」 

쫓아 온 Lee의 길쭉한 손이 다시 자신의 몸을 옭아 매었다. 
아니, 매달려 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 
그것보다 Kiyose는 그의 목소리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 때도 느꼈던 거지만 지나치게 … 가/볍/다. 
적어도 'Don't' 이라는 명령어를 쓸 때에는 목에 힘을 줘도 좋으련만 
의식적으로 모든 단어를 - 되도록 성대를 적게 사용하고 - 
입 안에서만 수월하게 재잘거리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도 진심으로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극장 안에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을 전율에 떨게 만들었던 그 소름 끼치도록 울리는 음성은 
지금,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다. 


갑자기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 보니 하얀색의 Porsche 가 길가에 정차하고 있다. 
Klaxon을 누른 것은 조수석에 있던 여자, 
convertible형의 모델로 덮개가 젖혀져 있어서 얼굴이 분명히 보인다. 
잠시나마 Robert Lee의 애인이 아닐까하는 오해를 했었지만 
도무지 경박, 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상에 그런 생각은 접었다. 
숙녀를 모독하는 행위다. 
옷차림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데다 어딘가 제/대/로/된 직장을 가진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저 여자와 Kevin을 비롯해서 그의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실해 보이는데 
자신의 앞에서 여자에게 '기다려.'라는 듯한 손동작을 하고 있는 이 인간은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운전 중에 자신을 발견하고는 - 가뜩이나 차가 밀리는 이런 번화가에서 - 
냉큼 차를 세운 것이 분명했다. 
단속 경찰은 뭐하나, 이런 인간 안 잡아 가고. 

흥, 
최신형의 스포츠 카를 굴리면서도 파.산...이라 이거지. 

「이봐…」 

「 ……」 

무시하고 발걸음을 더욱 놀렸다. 

「 …se.] 

「 ……」 

「Kiyose.」 

「 ……」 

Richard 가 아닌 성으로 불렸다. 
그 생각에 잠시 머뭇거렸을 때 Kiyose는 다시 그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분명히 싫은 기색을 했는데도 이렇게까지 달라 붙을 정도라면 
무언가 자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사과를 하고 싶다든지 … 
뒤늦게 Kevin과의 사이가 어색해질 것이 두려워서 '후회한다' 는 말을 하고 
'잊어 주겠어?'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든지 … 

그런 거라면 조금쯤 시간을 내줄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도 잊어 버리고 싶은 일이었고 …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데 그걸 받아주지 못한다면 어른답지 못한 짓이다. 

「네. 말씀하십시오, Mr. Lee.」 

Kiyose는 어깨를 돌려 짐짓 아량을 베풀어 준다는 식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나, 매주 화요일하고 목요일, 금요일은 
Greenwich Village(그리니치 빌리지; New York에 있는 예술가와 학생 중심의 지역)에 
볼 일이 있기 때문에 만나고 싶어도 시간을 낼 수가 없걸랑~ 
cellular phone 같은 거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지만 Kiyose를 위해서 곧 만들 거야.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에.」 

「어…」 

도대체 뭐가 나를 위해서냐!! 
Kiyose는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려 들었다는 생각에 도도독, 소름이 다 끼쳐 왔다. 







karma in New York 03 

by 즐겁죠 


단순히 취향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류하기도 힘들 만큼의 인종들이 섞여있는 이 뉴욕의 중심지에서, 좀처럼 볼수 없는 붉은 머리에, 한번 빠져든다면 결코 헤어나올수 없을 것 같은 멋진 몸매의 소유자라하더라도. 
그것이 너무나 자신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이 인간에게 취향인가 아닌가하는 단순한 질문 따위 생각할수도 없다는 것이다. 

보는 순간부터 그 가벼움과 경박함에 눈살부터 찌뿌려졌었다. 
도무지 정중한 느낌이라고는 쥐톨만치도 없었다. 
그 쨍쨍 거리는 목소리며 말투는 그 여름에 나를 그토록이나 압도했던 두려움따윈 느낄수가 없었다. 

"어서 적어. 이렇게 거추장스러운거 짊어 지고 다닐걸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지만. Kiyose를 위해서라면야." 

새하얀, 아니 번뜩인다고 해야할까, 이를 드러내며 활짝 벌어지는 입술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눈동자가 월가 어디서든 쉽게 볼수 있는 cellular phone을 자랑스럽게 휘두르며 웃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디서 이런 시간이 나오는것일까. 
분명 오늘은 그가 말했던, 그러니까 Greenwich Village에 가야만 한다는 화, 목, 금 중 목요일이 었던 것이다.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의 점심시간에 타사의 녀석들처럼 공원에 앉아 오랜만에 볕이나 쐬일까 했더니만 어디선가 바람처럼 들이닥쳐서는 팔을 부여안고 계속해서 연신 쫑알대는 것이다. 

"Mr. Lee. 주식매매에 대한 말씀이 아니시라면 오늘은 이만 물어가주시겠습니까? 저는 이만 식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이 촐랑아! 꺼져버려! 라고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수 없어 생각해낼수 있는 단어중에 가장 완곡한 어휘들만을 골라내 말을 건넸다. 이제 몇 번이나 만났다고 이 사람은 이렇게나 당당하게 나의 시간을 파고들려는 것일까. 

"어? 아직도 점심을 하지 않은거야? 쿡쿡... 역시 우린 무언가 통하는게 있나봐. 나도 아직이걸랑?! 샌드위치 싸왔으니까 같이 먹자앙~!" 

억지로 내 cellular phone을 열어 자신의 번호를 입력시키는가 싶더니만 이번에는 보기에도 요사스러운 눈웃음을 치며 어디선가 노란봉투를 꺼내들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한쪽의 샌드위치를 꼬옥 반쪽을 내서 나누어 주는 이 인간은 어딘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오늘은 Greenwich Village에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너 대체 왜 여깄는거야? 하고 한번 쏘아 주고 싶을 정도로 황당해 화가 난 마음은 어쩔수 없어 정중한 말투지만 나도 모르게 삐죽거리고 말았다. 

"아? ...Kiyose! 잊지 않고 있었구나?! 역시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던 거지?" 

순간 왜 그런말을 내뱉었을까, 대체 이 머리는 이런 곤경을 당하도록 왜 그렇게나 기억력이 좋은것일까!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오도록 그의 목소리는 환희에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그 음성의 저 밑면에는 그럼 그렇지 하는 자신감이 머리가 어찔할 정도로 다가와 그만 입을 확 꼬메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고객의 중요한 스케쥴을 잊을 정도로 부주의 하지는 않습니다." 

대충 차갑게 말을 얼버무리기는 했으나 이미 그의 기분은 하늘의 구름에라도 닿은 듯 높아져 있어서 들리지 않는듯했다. 

"역시 나오길 잘 했다. 아무래도 Kiyose가 생각나서 혹시 얼굴이라도 볼수 있지 않을까 해서 왔더니만." 

생리적인 그것과는 다른 포만감에 휩싸인 얼굴은 본래 위압적이리 만치 섹시한 얼굴을 더욱 고고하게 빛나게 만들었다. 
분명 입만 다물고 경박한 추태만 부리지 않는다면 손을 뻗지 않고는 못 견딜 미형이었다. 
내게 한 말인 듯 하여 한순간 뭐라 할까 고민을 했지만 먼곳을 보는 시선이나 혼자 만족스레 웃는 모양이 아무래도 혼잣말인 듯 싶었다. 

순간 분명 배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독백을 하듯 리듬을 타는 대사가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입모양이 이 순간 만큼은 아름다웠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 문득 내 시선에 스스로가 신경이 쓰여 손에 들린 샌드위치로 눈을 돌렸다. 맛도 괜찮고 모양새도 괜찮은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물자 시간이 좀 경과 된듯한 흐물흐물한 양배추가 입술에 달라붙는게 느껴졌다. 
이 놈의 샌드위치도 주인놈을 닮아 제멋대로 들러붙는군. 
깔끔한 식사를 교육 받아온 Kiyose는 입술에 달라붙은 양배추에 신경이 곤두서고 말았다. 쉽게 혀를 내밀어 떼어낼수 있다지만 먹으려던 음식이 볼썽 사납게 떨어지거나 달라붙다니 역시나 조금은 짜증이 올라왔다. 

"Kiyo-se. 뭐야, 어린애같이." 

언제 눈치를 챈건지 옆에 앉아있던 그가 놀리듯이 웃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것만 같아 반사적으로 혀를 내밀어 입술을 닦으려는 순간. 

"섹시해..." 

라는 신음같은 목소리가 의미조차 불분명하게 울려오더니만. 

oh! god!! 
키스당하고 말았다. 

온 월가 사람들이 응집해 있는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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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 in New York 04 

by 경랑 



『만나 봐, Bob』 

몇 달,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치열한 곳에서 인정받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다른 때라면, 
그 상대에 대한 것을 낱낱이 알고, 
진작 소개시켜주고 남았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멋진 사람이야. 차분하고, 포용력 있고… 우리보다 2살 어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 

그런데도 이제야… 
그것도 ‘내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이야기를 꺼낸 거다. 

『그런 멋/진/사/람을 어째서 지금까지 숨겼어?』 
『아직, 대답을 못 들었으니까.』 
『거절한 거야?』 
『못 들었다고 했잖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어떻게 할 거야? 만나볼래?』 
『…』 
『Bob』 
『알았어! 생각해 볼게. 이름이 뭔데?』 
『Rick이야. 정식 이름은 Richard Kiyose고. 잘 생각했어, Bob. 네 주머니 사정이야, 나빠질래야 더 이상 나빠질 만한 것도 없지만… Rick이 무슨 방도를 생각해 줄 거야.』 

별로, 
재정상태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연애사를 꿰차고 있는 나에게까지, 아끼고 아끼는 사람이 궁금했을 뿐이다. 


Richard Kiyose. 
단정한 외모에, 
예절교육을 따로 받은 듯한 반듯한 행동,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아무런 표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인형 - 정교하게 만든 동양인형 같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Kevin의 칭찬처럼 차분하고 포용력 있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어린 시절, 무작정 눈길을 끌었던 화려한 동양 인형처럼…일순, 끌렸다. 
그래, 그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Mr. Lee!」 

역시, 곱게 받아들이지는 않는군. 
사람도 많고,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니…당연한 건가? 
그래도, 이렇게 매몰찬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응? my dear?」 

얼굴이 빨갛다. 
잘 익은 토마토색으로 변한 얼굴에다가 반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는, 키스 때문에 당황한 것이 맞는 것 같은데… 표정은, 그대로다. 

은근한 도발에 『그럼 해 보시죠』라고 했을 때, 
곧은 자세로 앉은 그에게 펠라치오를 하다가 시선이 마주쳤을 때도 이랬다. 
화가 난 것도, 흥분한 것도, 기분이 좋은 것은 분명 알겠는데 그 표정은 아무 변화가 없이 얼굴만 붉어졌었다. 
딴에는, 꽤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말이지…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 맛도 없었다고~ 지금처럼 양배추 맛이라도 났으면 좋았으련만, 쓰기만 하고 기분도 썩 좋은 건 아니었다. 상대가 열렬한 반응이라도 보였으면 약간은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말해봐, 왜?」 

펠라치오에서는 표정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 
…화를 내는 것도 괜찮겠지? 
이 인형 같은 얼굴에 감정이 생긴다면 꽤 볼만할 거다. 
어떤 얼굴일까? 이 사람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이라는 건?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엉?」 

침착하다. 
얼굴은 붉은색이 가라앉을 뿐, 변화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 - 줄잡아 백은 넘었을 시선 앞에서 키스, 그것도 동성에게 당했는데도… 
이런 일‘따위’는 화낼 가치도 없는 하찮은 거라는 건가? 

「장난하고 싶으신 거라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해 주십시오. 전 Mr. Lee와 ‘장난’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닙니다.」 

아이고~ 정중하기도 하지. 
그렇게 ‘나는 아무 상관없다’라는 자세가… 흥미를 자극한다는 것은 모르나 보지? 

「Hey, my dear~」 
「그런 식으로도 부르지 마십시오. 전, Mr. Lee의 dear가 아닙니다.」 

물론, 아니지. 
난 Kevin처럼 동성애자가 아닌걸. 
그냥, 흥미가 당기는 것에 충실할 뿐이지. 

「그렇다고 내 증권매매인도 아니잖아?」 
「물론, 아닙니다. 그러니까 Mr. Lee에게 그런 식으로 불릴 이유가 없습니다.」 
‘Mr. Lee’ 
「Bob」 
어째서인지, 기분이 울컥~한다. 
「Bob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불러봐~ Bob 이라고…」 
「제게는, Mr. Lee를 그렇게 부를 이유도 없습니다. Mr. Lee와 개인적인 관계가 전/혀 없으니까요. 일할 시간이 되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정중한, 지나쳐서 희극으로 생각될 정도로 정중한 말투와 태도로 일관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사라졌다. 

역시… 
재미있단 말이야. 




「Bob, 갑자기 시간을 바꿔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ma'am.」 

Kiyose처럼 우아하고 정중한 말투를 가진 부인(이라기보다는 할머니에 가깝지만)에게, 
Kiyose에게는 보여주지 못한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가 Kiyose에게 통할지 궁금하네~ 
웬만한 경우, 귀찮은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미소인데… 비록, Kevin이나 Pamela같은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가식’이기는 하지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Kiyose에게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든단 말이야,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군. 

「Bob은 뭔가 즐거운 일이 있었나 보죠?」 
「그렇게 보이나요?」 

나야, Kiyose처럼 억지로 표정을 굳히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요, 아주 즐거워 보여요.」 
「별건 아니고요. 조금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냈죠.」 

귀여운, 사람과~ 

「그랬다면 다행이네요. 갑자기 시간을 늦춰야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답니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던가요?」 
「네, ma'am.」 
「그렇다면, 수업으로 막바로 들어가야겠군요.」 
자신의 이름을 건 master class를 운영하는, American Ballet Theater (아메리칸 발레단)의 우상이던 Linda Kirstein은 Ballerina 특유의 물이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연습장으로 들어갔다. 

그래, 지금은 귀중한 수업시간이니까. 




Richard Kiyose. 
지나치게, 흥미를 끄는 사람이다. 

Kevin이 지금껏 아끼던 이유를, 조금…아주 조금은 짐작할 정도로. 
그 자식, 불안했던 건지도 모르지. 
몇 번은, Kevin의 상대가 갑자기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바람에 헤어진 적도 있었으니까. 아무리 내가 이성애자이고, 남자에게는 전혀 성적인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불안하기도 했겠지. 
그것이 나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Bob Lee의 인격에 의심을 가지는 일이라고 해도…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 사람, 내가 보기에도 멋져 보였으니까. 

Richard Kiyose라는 사람, 매력 있는 사람이다. 
외모가 잘 생겼고, 
적당하게 잘 잡힌 근육과, 
진중해 보이는 (내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태도까지… 
동양인 특유의 ‘무표정’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 흥미를 끄는 것은 그런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냥, 그 존재가 내 시야 안에 들어오는 거다. 

무표정한 외면 아래에 있는, 
‘경계’가 무너지고 난 다음, 보이는 얼굴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는 흥미라고 할까? 

기분 좋게 웃는다면 어떤 표정이 될 지, 우는 얼굴은 또 어떤 느낌이 들 지, 
그런 것을 알 고 싶다는 기분일 뿐이다. 

그래, 그것뿐이다. 

남자… 
뭐가 부족해서 남자에게 눈독을 들인단 말인가. 













karma in New York 05 


by 가 규 




- 다른 사람을 만나도 좋아 … Lee가 항상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는 약속만 해 준다면.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어.'라고 내뱉자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매달려 왔었다.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도 자신을 'Don Juan' 의 환생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Pamela 의 고고한 얼굴을 바라보며 
Lee는 쓴웃음을 지었다. 
간혹 외박, 이라도 했을 때면 가뜩이나 창백한 뺨이 더욱 해쓱하게 변하며 그만 상처 입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누구와 있었냐' 고 묻지도 못한다. 

'이봐요, 아가씨. Bob Lee 라는 녀석은 당신을 꽤나 좋아하고 있다고.' 

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Lee는 테이블 위로 팔을 뻗어 비어 가는 Pamela의 잔에다 와인을 채워 주었다. 
그 흐르는 듯한 우아한 동작에 
Pamela를 비롯한 주위 테이블의 사람들이 넋을 잃고 Lee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간혹 이럴 때면 자신의 잘난 낯짝이 무척이나 싫어지는 Lee였다. 
평생을 무대에서 지내고 싶은 자신의 야심에는 상당한 Plus 작용을 해 주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오히려 손해 보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자신은 변성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시기부터 잠 잘 시간도 아껴 가며 죽도록 연습만 했었다. 
일어나면 악보를 외우고 노래를 불렀고 시간만 나면 춤을 추었다. 
거짓말 않고 제대로 연애 한 번 못 해 보았는데 
다들 자신의 외모만 보고 '바람둥이' 라고 판단해 버린다.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낙인찍어 버린다. 

Lee는 몇 테이블 떨어진 곳에서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Kiyose를 흘낏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자신의 소꿉동무인 Kevin과 식사 중이었다. 
뜻밖의 우연에 마음이 들떠 
다가가서 아는 척을 했더니, 자신과는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아서 
조금 기분이 상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아 주는 것은 아버지와 Kevin, 
그리고 같이 무대에 서는 배우들을 포함한 일에 관련된 사람들 뿐이다. 
그 사람들도 처음엔 Lee를 외모만으로 판단해 오해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전 수 개월의 연습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의 몇 배나 되는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해 내는 Lee의 노력과 역량 
주연급 배우로서는 드물게 항상 제일 먼저 연습실에 도착하고 
결석은 커녕 지각 한 번 하지 않는 그의 성실성에 고개를 숙이고는 
'Robert Lee' 라는 사람을 다시 보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자신을 증명할 방도가 없다. 
간혹 자신의 무대를 보는 기회가 있거나 녹화, 녹음된 performance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막의 oasis' 니 '신이 내린 목소리' 니 같은 어처구니 없는 말들을 하고는 한다. 
자신의 노력 따위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그저 '천부적 재능'으로만 치부해 버린다. 

타고나긴 뭐가 타고 났냐, 
그렇게 되기 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피를 토해 낸 줄이나 알아, 당신들이? 
지금은 뭐, 다 소용없는 일이 되었지만. 

아무튼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아 달라고 칭얼대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게 다짐을 하며, Lee는 다시 한 번 Kiyose의 매끈하게 빠진 등짝을 한껏 노려 보아 주었다. 
하지만 Kiyose와 마주 앉은 Kevin이 그런 Lee와 눈이 마주 쳐서 의아해 하는 표정을 하자 
곧 시선을 돌렸다. 
뭔지 모르지만 … 마음에 들지 않았다. 

Kiyose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이 쓰여서 
이건 혹시나 Pamela에게 

'이번엔 당신 곁으로 돌아 오지 못할 것 같아. - 바람 피운 적도 없었지만.(^^;;) - ' 

라고 말해야 되는 상황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Lee는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무슨 일이든지 꼭 확실히 하고서 넘어가야 하는 성격이었다. 
교통 체증 구역이 아닌데도 차가 밀린다면 왜 그런지 알아야 속이 시원했다. 
그래서 자신이 운전 중이라도 밖으로 나가 앞 쪽으로 걸어 가서 
상황 파악을 하고 나서야 돌아 온다. 
그러면 다른 운전자들은 그런 자신에게 
'뭔데요?? 무슨 일입니까??'하고 존경의 시선을 담고 물어 오는 것이다. 
사고가 났다면 어떤 사고인지, 공사 중이라면 어느 차선이 차단되어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무작정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 보다는 이유를 알고 납득하는 것이 더 만족스럽다는 것이 
Lee의 생활 철학. 
납득조차 할 수 없었던 고통의 시기가 있었긴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은 이제 일어 섰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삶에 대한 여러 호기심도 다시 하나하나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Kiyose를 처음 만날 날 그 녀석과 섹스를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가 나쁜 거야, 도대체?? 
순전히 자기만 좋도록 희생해 주었는데 왜 내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정말 더럽게 성격 나쁜 자식이네, 그거. 

그 '신경 쓰임'이란 것이 자신이 Kiyose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발전해서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일단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자신에겐 - 나름대로 소중히 여기고 있는 - Pamela도 있는데. 

아무튼 난생 처음 남자와의 성적 접촉 결과 정리되어진 Lee의 판단은 
'아, 다행이다. 역시나 섹스는 불가능 하겠군.' 이었다. 
다행이라는 이유는 그 몇 분의 경험이 간단히 말해서, 별로였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궁금해 졌다. 
자신은 무슨 이유로 저 녀석을 감정적으로 흔들리게 하고 싶은지. 

그리고 분했다. 
자신의 내면을 보아 주지 않아서. 
알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 분한 것이다. 
Pamela의 오해는 그의 질투와 더불어 자신에게 달콤한 충족감을 가져다 주고 있지만 

Kiyose의 시선은,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다. 
조금 전에도 '이 경박한 녀석을 또 만났군.'하는 얼굴이 되어 
자신을 냉정하게 외면했었다. 

나, 경박한가? 

어째서 … 







karma in New York 06 


by 란마루 





"……오늘따라 더 하잖아 저 녀석. 웬일이지?" 

Kevin이 Kiyose의 어깨너머로 힐끔힐끔 '그'의 쪽을 바라보더니, 마침내 감탄을 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든 손을 내려놓았다. Kiyose는 그가 무엇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그것'을 쳐다보거나 할만한 마음 따위는 나지 않았기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그녀석이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는 뻔했다. 조물주의 실수인지 다만 그 부모의 유전적 자질이 좋았던건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보다 특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에는 의의를 달 수 없는 그 외모를 뽐내며 사방에 페로몬이나 뿌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는 무작위의 박애정신으로. 

"제아무리 Pamela라지만, 저래서야 눈도 못떼겠는 걸. 위험 하다구 저러면." 

위험한 게 당연하다. 아무 생각없이 여기저기에 매력을 뿌리고 다니는 녀석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흉기였던 것이다. 저런 인간은 원래 그랬다. 자신의 매력적인 외모만 믿고, 자신이 홀려 놓고도. 자신의 매력에 홀린 사람을 책임질 생각 따위 애초부터 하지 않는다. 암내를 풍기는 암코양이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들을 모조리 발정나게 만들어 놓고는 그래,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단지 그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기는 악취미 이외에, 그 행동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Kiyose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그쪽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거야. 스테이크 식어." 

무심히 와인을 들이키며 Kiyose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정신이 난 듯, 혼을 빼 놓고 Lee를 바라보고 있던 Kevin이 눈을 돌려 Kiyose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쑥스럽게 웃었다. 

"아 미안 Kiyose. 저 녀석을 보면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는 것 같아서 조마조마하거든.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고 있으면서 바보같이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몰라. 게다가 저 녀석 손이 무지하게 많이 가는 녀석이거든." 

바보같이 사람만 좋아서는. 그래서는 저런 녀석에게 이용당하는 걸 평생 벗어나지 못할텐데. Kiyose는 Kevin의 변명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귀여우니까." 

그래서 용서한다는 뜻일까? 가당찮기도 하지. 니가 저 녀석 애비라도 되냐?(--;;) 
Kiyose는 어쩐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웃고 있는 Kevin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지금 이 말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Kiyose는 그래서, 이쪽도 나름대로는 꽤 무섭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녀석이긴 하더군." 

살다 살다 저렇게 정신이 사납게 구는 녀석은 처음이니까 말이다. Kiyose는 그러다가, 마냥 사람 좋게만 웃고있던 Kevin의 얼굴이 어색하게 일그러진 웃음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Kevin은 순간적으로 놀란 듯 얼굴을 굳혔다가 Kiyose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알고 딱딱하게 굳은 볼을 허물어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저 맹한 녀석에게 포커페이스라니. 그게 잘 될 리가 없었다. 
저래갖고 법정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변신을 하는 걸까? 이중인격인가? 

"뭐. 매력적이니까……" 

Kevin은 곤란한 듯 웃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뒷말이 생기를 잃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눈에 뜨이게 의기소침한 모습. 이것 또한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어서 무서웠다. Kevin은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Lee보다도 상대하기가 어려운 타입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한번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타입이니까. 이 정도로 진심으로 나오는 상대에게는 진심으로 대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Kevin." 

Kiyose는 Kevin의 오해를 정정해 주고 싶었다. 어차피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청에 대해선. 그의 '청'이라는 것이, 프로포즈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어차피 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도 없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누./군/가/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저 외모뿐인 페로몬 덩어리에게 혹해있다는 착각을 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응?" 

"…걱정하는 게 뭐야." 

Kevin의 눈이 Kiyose를 향했다. Kiyose의 표정 없는 얼굴이 일순 차가워진 듯 보이는 것은 자신의 눈의 착각만은 아닌 듯 하다. Kevin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바이라서 걱정인가? 미안하지만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있는데. 바이라면 아무한테나 혹할 거 라고 생각하고 있어 Kevin?" 

"아니,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야. Bobbie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건 사실이지만." 

"나는 난잡한 녀석 싫어해. 알잖아." 

"알아. 그리고 너도 난잡하게 여러 상대와 어울리는 거 싫어하는 것도 알고. 스테티한 상대가 있는 사람과도 사귀지 않잖아. 네 도덕관념정도는 나도 안다고." 

너무 잘 알아서 탈인걸………Kevin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Lee는 난잡하지 않는데. 저 녀석 외모가 화려하니까 남들이 착각하는 것뿐이라고. 이제껏 스테디하게 사귄 상대는 Pamela뿐일 정도니까." 

"네가 말하는 Pamela가 저 Pamela라면, 케빈. 네가 잊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해두는데 그녀는 유부녀야." 

얼마 전에 본 그 미인이 Wilson가의 그 Pamela양이었다는 사실을, 타임지의 가쉽난에서 알게 된 Kiyose는 기가 막힌 심정이었었다. 어쩐지 처음 볼 때 눈에 익다 했더니, 이쪽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프로필을 읊어야 하는 Wilson가의 안주인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상속녀도 아니고, 안/주/인/ 말이다. 
절/대/로/ 싫/다/라는 것을 표정으로 드러내면서 Kiyose는 눈살을 찌푸렸다. Kiyose는 개인적으로, 문란한 성생활이라든지 sex friend라는 개념 같은 것을 싫어하는 편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기혼남녀의 불륜이었다. 

"Kiyose." 

"고기 식어. 안 먹을 꺼야?" 

Kevin은 얼마 전에 머라이어 캐리(장미꽃 이름)를 한 다발이나 떠 안기며 구혼을 했던 상대의 냉담한 재촉에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괜히 가슴이 덜컹했던 것도-게다가 그것을 상대에게 들킨 것이- 부끄러웠지만, 자신의 착각 때문에 죄도 없는 Lee가 욕을 먹은 거 같아 그것이 더 신경이 쓰인다. 단정한 외모의 Kiyose는 방금 자신이 Kevin에게 던져놓은 파장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듯 또 한쪽의 고기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Kevin은 어쩐지 Kiyose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것 같은 Lee의 상태를 깨달으며 자신도 고기를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하긴 겉모양이 굉장히 화려한데다가, 근거 없는 추측성 기사의 난무로 브로드웨이의 관계자가 아니라도 Bob Lee의 여성편력정도는 꿰고 있을 것이었다. 담백한 하기 그지 없는 Kiyose가 그런 Lee의 소문으로 선입견을 잔뜩 키운 후에, 거기다가 처음 보는 사람은 영락없이 '가볍다'라고 여길만한 녀석을 직접 만났으니 불쾌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물론 싫어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좀 의외지만.) 
그러나 Kiyose의 오해와는 달리, Lee가 사실 그렇게 나쁜 녀석인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기에나 불량해 보이지 사실 알고 보면 저 녀석, 굉장한 노력파였던 것이다. 노력파라는 말도 모자라, 저 자식 연습중독이었던 것이다. 것도 독종이다. 
…하지만, 언제나 저 빼어난 외모 때문에 안나 파블로바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녀석의 비운이었다. '어머, 이 이상 춤출 순 없어요. 그렇게 하면 뮤지컬(안나의 경우는 발레)이 싫어질 거 같아'라니. 그런 시건방진 대사를 '노력하지 않는 자에겐 국물도 없다'주의의 저 녀석이 내 뱉을 리가 없지 않나. 
선입견이란 무서운 거였다.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데, Kiyose. 너랑 저 녀석 사이를 의심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어. 우선 저 녀석은 완벽한 헤테로이고,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너랑 나랑은 친구일 뿐이고, 나한테는 네 사생활에 내가 참견할 권리가 없으니까. 밝혀두는데, 나는 둘 사이 오해한 거 아니야. 네가 난잡하다고는 생각해 본적 없었어. 나로써는 오히려 그 담백함이 가끔씩 아쉬울 지경이니까 말이야. ……아니 잠깐. 이건 못들은 걸로 해. 젠장, 무슨 놈의 변호사가 이렇게 말을 못하는 거야?." 

Kevin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가, 중간에 삐끗하더니 그대로 실족사 하고 말았다(--;;).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긴장한 Kevin이 '방금건 성희롱도 유혹도 아니야. 알지? 단지 진심이 잘못 나온-아니. 그게 아니고. 미안해 Kiyose-.'라는 식으로 실수에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말로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 같아 보였다. Kiyose는 점점 끝이 치켜져 올라가는 입술을 지그시 억누르며 땀까지 뻘뻘 흘리며 당황하고 있는 Kevin을 바라보았다. 
좀, 불쌍하다. 

"알아들었어. 그러니 그만해." 

"아니, Kiyose.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거든. 그러니까-" 

"이봐 변호사 양반. 한 마디만 더하면 나는 네가 나를 놀리려고 그런다고 생각할거야. 솔직히 말해, 변호사가 요령 없이 말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너한테 한다면 너는 믿겠냐?" 

"……안 믿겠지." 

진지한 Kiyose의 말에 풀이 죽은 Kevin이 대꾸했다. 그 말대로였다. 변호사, 그것도 뉴욕 유수의 법률회사를 다니고 있는 전도양양한 변호사가 언변을 실수했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말이다. 당사자를 놀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변명일 텐데. 

"하지만 나는 믿어. 네 말이니까 믿어줄게. 됐지? 밥이나 먹자니까." 

Kiyose는 더 이상 입 꼬리를 누르지 못하고, 치켜 올라간 것을 내버려두며 그렇게 말했다.하지만 그것으로도 참지 못하겠던 모양인지, Kevin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달래지를 못했다. Lee는 웃음을 터트리는 뒷모습을, 자신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Kiyose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앞에서 쩔쩔매는 Kevin의 얼굴도 같이 보인다. 

'아쭈 웃어? 웃었다 이거지?' 

십대 때부터, 여느 아이들이라면 울면서 도망쳤을 하드한 연습량을 이를 악물고 소화해낸 자신이었다. 정신이 즐거워도 몸이 힘든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었지만, 자신은 자신이 그것을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해낼 때까지 하고야 만다는 성격을 가졌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몸을 혹사해, 현재의 병을 안게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Bob?" 

Pamela는 묘하게 의지에 가득차 보이는 Bob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서 그를 불렀다.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있었다. Lee는 그녀의 부름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가 굉장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응?" 

"지금 Bob의 얼굴……웬지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걸. 왜 그래? 무슨 일을 하려고?" 

저지르려고-의 뉘앙스가 상당히 짙은 말투였다. Pamela의 그런 걱정어린 표정이 보기 좋지 않았던 Lee는 히죽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었다. 

"무슨 일은. 그냥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거야. 신경 쓰지마."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더더욱 불안한 얼굴이 되어버린 Pamela는, 마치 악의적으로 일그러진 미남의 웃는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얼굴이 기분이 좋아서 웃는 얼굴이라구? 
그 말을 어떻게 믿어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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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ma in New York 07 


by 즐겁죠 


"…걱정하는게 뭐야." 

약간은 한심하다는 듯한 한숨과 함께 날아온 차디찬 한마디에 몸이 굳어 버렸다. 한눈에 보 
기에도 단정한 그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챌수 있었기에. 
그래. Kevin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절친한 친우라 하는 말을 서슴없이 갈겨대면서도, 또한 집안끼리의 친분으로 가족이외의 가 
장 오랜 세월을 함께한 너무나 사랑해 마지 않는 친구이면서도. 
Kevin은 마치 엄마의 손을 빼앗긴 아기라도 되는양 그렇게 불안해 심장이 잘게 잘게 쪼게 
지는것만 같았던 것이다. 

'미안, Kevin. 난 Bob가좋아.' 

무수히 많았던 사랑의 감정들은 다 저 한마디에 차갑게 식어 버렸다. 
아니 처절하게 내동댕이 쳐졌다. 
어쩌면 인종도 성격도 취향도 다 달랐던 그 사람들이 그 마지막 순간에 내 뱉는 말들이라곤 
다 저 한마디 였는지. 
그때마다 가장 커다란 상처였던 것은 Bob의 매력에는 어쩔수 없다고 인정하는 자신보다도 그런 Bob가 자신의 친구라는 현실이 못내 씁쓸했다. 
스스로의 매력이 그렇게 싸구려라고는 생각지 않는데 교제 기간, 깊이에 구애없이 그렇게나 쉽게 Bob에게 빠져버리는지. 
그 사실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끝내 'Bob이라면...어쩔수 없지.'하며 납득해 버리는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져 이별의 눈물조차 제대로 흘려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무엇에나 열심이었다. 학과공부도 학외의 활동도 '모범의 전형'이 되어 그런 행동의 결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아왔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었다. 
부모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겨 어린 나이부터 당연스레 변호사의 꿈을 가졌 
고 항상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자신을 인내하고 다스려왔었다. 
하지만. Bob은 달랐다. 
그가 하는 행동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의 존재로서 인정을 받아왔었던 
것이다. 
빼어난 외모와 뭐라 말로 설명하기에도 어려운 독특한 매력으로 그는 그가 하는 행동 모두 
를 찬사의 것으로 만들어 놓곤 했었다. 
뭣모르던 시절에는 그런 매력을 가진 그의 Kevin의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Kevin은 그의 신봉자였다. 
그를 따르는 여타의 다른 사람들과 틀리지 않게. 
하지만. 
그 '친구'의 자리가. 그저 신의 조형물이라고밖에는 표현할수 없는 그의 매력앞에서는 한낱 
허무한 치장밖에는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Kevin은 조금씩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사춘기라는 어린 시절에 그의 친구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무수한 상처들은 이제와 생각하면 
법조인의 자세를 만들어 주는 커다란 반석이기조차 했다. 
그저 유약하고 샌님같았던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조금더 단단하게 만들어줬고 조금 
은 약삭빠르게도 만들어 주었다. 
Kevin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꾸밈'과 '진심'을 구별해 낼수 있는 눈을 조금이나마 뜰수 있었다. 

Bob로 인한 지혜의 깊이가 깊어가면서 Kevin은 자신의 성벽을 깨닫게 되었다. 
순수한 게이로서의 자각은 Kevin을 힘들게도 만들었지만, 되려 자신을 좀더 사랑하고 받아들일수도 있게 만들었다. 
묘한 일이지만 극한의 상황에 몰리니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또한 자신의 아름다운 점들을 찾아내어 단점조차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며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힘든 과정에서도 Bob는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 더욱 깊이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둘의 깊은 우정에도 제 3자만 끼어들면 Kevin은, 그저 친구를 사랑하기만 하는 착한 놈이 될수가 없었다. 

그가 헤테로라고 해서 Kevin이 사귀었던 그들도 그를 헤테로로 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동성에 끌리는 타입이 아니라고 슬쩍 귀뜸을 해주어도, 그들은 단지 친구인 Kevin이 사귀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약간의 호감을 주제도 넘게 오해하고는 했던 것이다. 

우스운 것은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값싼 웃음 하나에도(그러니까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나왔거나 가끔 우스운 농담이 생각나 싱글대는 그런 웃음 말이다.) 그들은 혼자서 허무맹랑한 상상에 빠져 이 Kevin을 버리고 그에게 갈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 따위 것들에게 작은 관용조차도 없던 Bob이었기에 둘의 교제가 흘들리긴 했었도 깊은 상처는 낼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불안해하는 것은 하나같이 그의 절대적인 매력앞에 무릎 꿇지 않을 자는 없을것이라는 다분히 그의 팬으로서의 선입견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 이별의 50%이상의 요인으로 작용했던 그에게 내 눈앞에 이 남자를 소개해주는 것은 하나의 도박과 같았다. 

"경박해." 

눈쌀을 찌푸리며(물론 시각적인 것이 아닌 심리적인 눈으로 보여지는 표정이지만) 편치만은 않은 그의 평가를 들었을때는 하늘에라도 오를 듯이 기뻤던 것은 비열하지만 그래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와 사귈 가능성은 0.01% 이하로 처참할 정도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마음을 흘려보낼수 있는것은. 그가 아주 조금은 자신에게 애정에 육박할수 있는 호감과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친구라 하면서도 연인들의 데이트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저녁식사도 청해오니까 
말이다. 
복잡한 머리에 자신도 모르게 실수한 말을 수습하려는 자신을 보기 쉽지 않은 웃음으로 다 
독거려주는 Kiyose를 바라보며 다시한번 회심의 미소를 짓는 Kevin은 Bob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이제 사춘기시절의 자신감 없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Kevin은 사라지고 없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의 외모와 잔인할 정도의 자기 관리능력을 팬이라고 표현할수밖에 없도록 높이 평가하기는 하지만 친구라는 위치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기에 몇몇의 실연에서 느낀 자기비하와 쓰라린 패배감 속에서도 그에 대한 본능적이기까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맥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눈앞의 이 남자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그에대한 우정이 단단해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래서 조금은 자신을 가져보고 싶은 Kevin이었다. 
이 마음의 끝이 어찌되든 이대로는 도저히 포기할수 없는 의기가 자신도 모르는곳에서 치솟 
아 오르는 바보같은 Kevin. 
아마도 일생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은 깊은 사랑에 빠져버린 사내. Kevin. 




karma in New York 08 

by 경랑 



파랗다. 
보이는 것은 당장이라도 파란 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과, 커다란 숲.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눈과, 가슴이 아프도록. 

떨리는 주먹으로 젖어버린 눈을 비비면서, 
난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나, 
지금 울고 있는 건가? 
아니면…꿈? 

내가 눈물을 흘린 때라고는, 아주 어렸을 때외엔 없었는데… 
힘든 연습을 하면서, 힘들기보다는 분해서 울었던 것밖에 없었다. 
타인은 쉽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을, 그들의 두, 세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화가 나 울었었지. 

그래, 난 지금 그때의 꿈을 꾸고 있는 거로군. 



울면 안된다는 이야길,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고 있으니까 『눈물』을 쉽게 흘리는 일따위 해서는 안 된다고. 
내 마음을 스스로 다져잡아서,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너무 무섭다, 이곳은. 
사람은커녕,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더 무섭다. 
넓고 큰 문…내가 지났던 곳을 찾아야 하는데, 한참을 돌아다녀 보아도 없다. 

무서우니까… 
혼자니까… 
한번쯤은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황자(皇子)라고 해도, 난 어린애니까… 



어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아닌가? 



『체형님-』 

형의, 다정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좋은 사람이니까, 
강한 사람이니까, 
체형님은 낯선 곳을 두려워하며 울지 않겠지. 
아니, 나처럼 이런 곳에 홀로 있다고 해도 헤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나와는 달리… 

『누구십니까?』 



이 목소리는… 
Kiyose? 
막 변성기가 시작될때처럼 불안정하지만, Kiyose다. 
Kiyose가 …어째서 내 꿈에 나타나는 거지? 



『누구십니까? 이 곳은…』 

앞쪽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른. 어른이면, 나를 이곳에서 - 이 무서운 곳에서 데리고 나가주겠지. 
그래서 궁으로, 체형님이 계신 곳으로 날 데려가 줄 거야. 
이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아….그 전에 이 눈물부터 닦아야 해. 
황자는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빨갛다 - 내 머리카락처럼. 
그리고 크다. 



Kiyose? 
저게 Kiyose야? 
농담이겠지? 
저렇게 어린…애가 아니라구, 
그리고, 생긴것도 딴판인데? 
게다가, 저 옷은 뭐야? 
빨간, 아니 자주색? 여자들이나 입을만한…아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옷차림 같은데… 
긴 머리에다가, 자주색 가운… 
그래, 기억났다. 중국옷이다. 형태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저건 중국의 옛날 옷이겠지? 

그나저나, 저 남자… 정말 Kiyose인가? 
설마… 아니겠지. 
목소리는 비슷한 것 같지만, 얼굴이 틀리잖아. 또 나이도 훨씬 어리고. 원래 동양인들을 동안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저 얼굴은 10대지 30대가 아니라구~!! 

하지만… 
…저 사람은 Kiyose다. 

Richard Kiyose - 내 신경을 긁어대고 있는 그 Kiyose다. 



낯설고, 처음보는 사람이다. 
체형님의 호위무사만큼 키도 크다. 그들처럼 긴칼을 차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여기는 아바마마의 궁이니까… 
저 봐, 나를 보고서 절을 하며 예를 올리잖아. 
입고 있는 옷이 관복(官服)은 아니니까 대신은 아니고, 환관같지도 않은데…누구지? 
무슨 상관이 있겠어? 궁에 있으니까 체형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겠지. 
다리도 아픈데, 잘됐다. 업어 달라고 해야지. 

『길을 잃었어.』 
『…』 
『체형님이 계시는 곳까지 데려다 줘.』 

빨리 체형님에게 가야지…그리고 저녁을 같이 먹고, 무서웠다고 이야기해야지. 
울었다는 이야기는 하지말고, 꿋꿋하게 사람을 기다렸다고… 

어… 



왜? 
어린 꼬마? 



눈이… 
눈이 무서워. 

위쪽으로 쭉~ 찢어진데다가, 
눈이 좀…옅어서…다른 사람들처럼 검은 게 아니라, 좀…밝아서… 
여기, 사람들이 안 오는 곳이지? 그럼…인간이 아닌건가? 
…무서워. 

무섭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울면 안되지만… 
황자는 아무 데서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지만… 
고귀한 핏줄이니까 이따위 - 무섭다는 걸로 울면 안되지만… 

…이 사람의 눈은 너무 무섭다. 

체형님… 

『황자저하?!』 

체형님, 
나, 무서워요. 






「Bob?」 

거실 쪽에서 Pamela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엌에 있어.」 

그녀 몫의 커피를 준비하며 대답했다. 
평소보다 빨리 일어난 덕에 Pamela의 잠자는 얼굴을 보는 재미있는 일까지 있었지만,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고 싶지도 않았고.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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