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는 뺨도 많이 부어올랐고, 전신에 쑤시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컨디션이 무척 안 좋았지만, 종무식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쉬기도 뭣해서 할 수 없이 김희선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을 하는 길이었다.
“나 걷는 모습 이상하지 않아?”
회사 부근에서 내렸을 때, 김희선은 호준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어색하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두 다리 사이에서 이물감이 느껴졌으리라.
“괜찮아! 자꾸 그렇게 생각해서 그래.”
“...아직도 오빠 그게...들어있는 것 같아!”
말을 뱉어 놓고는 겸연쩍은 듯 히히 웃어대니 당연 귀여울 수밖에.
막 말로 아침에 일어나자부터 다짜고짜 울고불고 했으면 정말 대책이 안 설 뻔 했는데,
호준을 부르는 호칭부터 자연스럽게 오빠로 변해있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란 말인가.
“이제부터 오빠랑 같이 다니려면 굽이 낮은 신발을 신어야 되겠네.”
벌써부터 호준의 작은 키가 은근히 신경 쓰이나 보다. 김희선의 말을 듣자, 호준도
무심결에 그녀의 발을 쳐다봤으나 그녀가 운동화를 신는다고 해도 키 차이는
별반 줄어들 것 같지가 않았다.
“그냥 신고 싶은 것 신어. 난 여자들 하이힐 신은 게 은근히 섹시하더라.”
“그래두...”
모퉁이만 돌아서면 회사 정문이 나타날 지점에 이르렀을 때, 김희선이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호준의 귀에 속삭여 왔다.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오빠는 조금 있다가 들어 와. 사무실에서는
아는 척 하기 없기~.”
그건 호준도 바라던 바다. 그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웃으면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그녀의 입술이 번개처럼 호준의 입술을 쪽 소리가 나도록 덮치고는 벌써 저만치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조금 뒤쳐져서 따라오던 젊은 아줌마가 호준과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는 모습이 보였다.
한 템포 죽이기 위해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옆에서 김영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으...응? 이, 일은 무슨 일?”
“그런데 왜 얼굴이 그 지경이 됐어요?”
잔뜩 토라진 목소리였지만, 은근히 걱정되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그냥 그렇게 됐어. 그런데, 김주임은 언제 집에 갔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부장님이랑 백대리님이 나가고 나니깐 조금 있다가
유대리님까지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 있죠. 혹시 세 분이 따로 만난 거 아니에요?”
아마도 호준의 얼굴상처가 두 여자와 무슨 관련이 없을까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무려면 여자들한테 이 지경이 되도록 맞았을라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와서
크큭 웃었는데, 김영희가 돌연 걸음을 멈추면서 화난 표정을 지었다.
“왜, 웃어요? 난 심각한데...”
“큭.큭...그, 그럼 내가 두 여자들한테 줘 터지기라도 했는지 알았어?”
어이가 없다는 듯 호준은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김영희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호준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도 무안해 지고 말았다.
“왜 그래? 사람 무안하게...”
“사실, 나도 어제 백대리님한테 얘기할 게 있었단 말이에요.”
“그랬어? 지금 얘기하면 되지.”
호준은 이 여자가 왜 아침부터 수선이냐는 마음에서 건성으로 대답을 했는데,
김영희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갑자기 고함을 빽 지르는 것이 아닌가.
“됐어요!”
아니, 이 여자가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나. 빼빼마른 몸집에서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지?
호준이 황당해서 쳐다보았을 때, 그녀는 홱 돌아서더니 먼저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젠장, 가는 놈 붙잡아 놓고 먼저 말 붙인 게 누군데...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런다고 어디 화풀이 할 구석이나 있나 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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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식당에서 직원들과 더불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중에 조금 뒤처져서 걷고 있던
호준에게 나수정 대리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내년 2월 첫 주에 날짜 잡았어요.”
“하하. 그래요? 잘 됐네요. 축하합니다.”
탄탄하게 올라붙은 그녀의 팽팽한 엉덩이를 맛보지 못하고 그냥 시집을 보낸다는 것이
내심 아까운 맘도 들었지만, 어쨌든 잘 된 일이라는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시 부탁을 드릴 게 있어서...”
“뭔데요?”
“실은 어머니께서 백대리님을 한 번 더 만나야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네요.
혼수문제 등으로 꼭 상의할 것이 있다고...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일륜지대사기 때문에 안 된대요. 이걸 어쩌죠?”
나수정 대리의 얼굴이 미안함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언제 만나자고 하는데요?”
‘윤미선의 걸쭉한 욕설을 또 다시 들어야 되나보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흥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보자고 하시던데...괜찮으시겠어요?”
“뭐. 이왕에 발을 디뎠으니, 최선을 다해야겠죠. 날짜를 잡아서 연락 주세요.”
호준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을 하자, 나수정이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요...백대리님이 직접 연락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전해달래요. 둘이 만나서
상의해 보자고...“
“그, 그럼 그분과 저만 만난다고요?”
“예. 그래서 넘 죄송해서...”
아예, 작정을 했구나 싶었지만, 나수정이 넘겨주는 윤미선의 연락처를 챙겨들면서
호준은 빙긋이 웃고 말았다.
“뭐, 별 일이야 있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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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웬 남자구두?’
오후 근무를 하는 둥 마는 둥 모두가 들떠 있었기 때문에 업무도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마치고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왔더니,
현관 앞에 낯선 남자의 구두가 보였던 것이다.
의아한 마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현관 문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오셨다.
“호, 호준이 왔니?”
어머니의 안색이 한 눈에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창백해 있었기 때문에 호준은
영문을 몰라서 무언가 물어보려고 했으나, 어쩐지 불길한 기운이 집안에 감도는 듯
긴장감을 느낀 탓에 말없이 어머니의 안색만 살필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오셨단다.”
어머니는 긴장한 듯 양손을 몇 번 쥐락펴락 하시더니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여시는 것이 아닌가.
‘아, 아버지가?’
그제야 어머니가 긴장한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만 잊지 않을 정도로 집에 들르셨다가 바람처럼 떠나시곤 했던
아버지였기 때문에 평**면 그렇게까지 긴장할 이유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 않은가.
‘...웬일이지 소식도 없이.’
호준도 가슴이 철렁하기는 어머니와 마찬가지였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내심 각오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막상 오늘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오셨다고요?”
두근거리는 마음과 달리 호준은 반가운 것처럼 큰 목소리를 내뱉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듯 주먹을 꼭 움켜쥔 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떡 거린다.
“그럼, 얼른 뵈어야겠네요.”
구두를 벗어던지며 호준은 어머니에게 긴장하지 말라는 뜻으로 눈을 찡긋거렸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짓인 듯 했다.
“그, 그래.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이, 인사를 드려야지.”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고, 하얀색 홈드레스를 걸쳐 입은 그녀의 풍만한 몸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왜소한 듯 느껴진다.
쿨럭. 쿨럭...
방안에서 아버지의 습관적인 잔기침소리가 들려왔지만, 호준은 알고 있었다.
그가 오